‘사랑이라는 화두’의 첫번째 소설 <견딜 수 없는 사랑> 이언 매큐언

10기 이은진
2024-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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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언 매큐언의 소설은 충격적이다. 소위 반전의 반전과 같은 폭로가 지배하는 서사 때문은 아니다. ‘사랑이란 무엇일까’, 나아가 ‘견딜 수 없는’ 사랑은 도대체 무엇일까 하는 궁금증으로 소설을 펼쳤을 때 내가 기대했던 건, 이런 게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 내가 받은 충격이 이것 때문만은 아니다. 나의 기대나 질문에 대한 답을 못 들어서는 아닌 것 같다. 소설 속 모든 인물 간의 ‘사랑’을 둘러싼 관계 변화는 대체로 조의 관점에서 서술되는 심리 묘사와 더불어 너무나 완벽하게 깊고 흥미진진하다. 나의 불편함을 정확히 설명하긴 어렵지만, 소설을 다 읽고 난 후 나는 ‘침범당한’ 혹은 ‘공격받은’ 느낌이 들었다. 왜일까.


과학 저널리스트인 조와 문학 교수인 클래리사는 적절한 거리감으로 조화를 이루며 사랑을 나누는 관계다. 합리적인 인간과 시적인 인간이 오랜 기간 서로를 존중하고 감싸주고 또 자주 섹스를 즐기며 평온하게 살아왔다. 그런데 종교적 믿음의 인간, 제드가 불쑥 끼어든다. 그는 이해 불가한 열정으로 사랑을 고백하고 일상을 훼방 놓고 살해를 모의하며 결국 두 사람 앞에서 자해를 시도한다. 제드의 사랑(혹은 믿음)은 일방적이며 광기와도 같다. 과학적으로도 문학적으로도 해명할 수 없는 인간의 본성. 법(경찰로 대표되는)도 이런 식의 열정은 제어할 수 없다. 겨우겨우 불법을 동원해서야(마약상 조니를 대동하고 총을 구하러 간 일) 이 광기어린 열정을 막을지도 모르는 무기 하나를 얻을 뿐인데, 그나마 주인공은 이 무기를 어떻게 조준해야 하는지도 잘 알지 못한다.   


여기까지 쓰고 나니, 내가 들었던 침범당한 혹은 공격당한 느낌의 이유를 조금은 알 것도 같다. 이언 매큐언은 인간을 혹은 인생을 이해하는 데에 있어 우리가 아무리 합리적이려고 노력해도(과학 저널리스트 조처럼), 아무리 통찰력을 발휘하려 노력해도(문학 교수 클래리사처럼), 필연도 아닌 어떤 우연으로 인해 감당불가한 일이 불쑥 일어난다는 것을 소설을 통해 차근차근 증명해 나간다. 인간은 이성적, 감성적 존재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해석할 수 없는 열정과 광기를 가진 존재이기도 하다는 것, 그리고 인생은 내 의지대로만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돌풍 같은 우연에 가차없이 행로가 바뀔 수도 있다는 것을. '살다 보면 이런 일이 너의 평화를 산산조각 내기도 한단다', '살다 보면 이런 인간이 너의 일상을 갉아먹기도 한단다', 이런 경고를 받은 느낌. 


이런 식의 경고는 주인공 조와 클래리사, 제드의 서사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하루 아침에 열기구를 끝까지 붙들다가 목숨을 잃은 의사 존 로건과, 남편의 죽음보다 불륜(으로 의심되는 증거들)에 더 큰 충격을 받은 부인 진 로건의 서사에서도 반복된다. 역사 선생인 진 로건은 남편의 죽음의 현장에서 나온 증거들을 바탕으로 그녀가 모르는 남편의 시간들(남편의 역사)을 알아내려 한다. 주인공의 도움으로 그녀는 남편이 결백하다는 진실을 대면한다. 하지만 그녀는 용서받을 수도 없다. 이미 죽은 남편을 의심 했기에. 그리고 그녀를 딜레마에 빠뜨린 이 고통스런 진실은 고작 늙은 교수와 여대생의 연애, 히치하이킹이라는 ‘우연’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게 소설이어서 다행이라고 마음을 놓을 수 있을까.  예측불가능한 시대에 이런 불운은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으며, 나에게도 어쩌면 제드와 같은 망상적 믿음이 생기지 말라는 법이 없지 않을까. 불안감이 솟구친다. 나는 히피 마약상 조니같이 총을 구해줄 친구도 없는데.. 나는 무신론자지만 내 나름의 믿음체계 속에서 열정적으로 살아가고 있는데… 이렇게 좀 가볍게 농이라도 쳐야 불안감이 조금은 가라앉는 느낌이다.   


그래서 다시, 사랑은 무엇인가. 조와 클래리사처럼 이상적인 관계도, 존과 진처럼 평범한 관계도, 나이든 교수와 어린 학생처럼 관습을 넘어선 관계도, 조니가 데려간 산골 구석의 히피들처럼 폭력으로 서로를 묶어두는 관계도 다 이해 가능한 사랑의 관계다. 그런데 제드는 일방적이었다. 소설 속에서 그는 변치 않는 가장 열정적인 사랑, 빛과 같은 하느님의 사랑을 외친 존재지만, 그의 사랑은 ‘드 클레랑보 증후군’이라는 망상적 믿음, 광기의 열정으로 설명할 수밖에 없다. 결국 그의 사랑은 ‘이해할 수 없다’. 

그래도 그런 사랑도 있다. 아니 어쩌면, 사랑 자체에 이런 속성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무섭다.


소설의 결말을 생각하면 허무하긴 해도 한 순간 이런 게 사랑인가보다, 느낀 구절이 있다. 

 "그 일이 의미하는 걸 하나 말해줄게, 멍청이 씨. 우린 끔찍한 일을 함께 목격했어. 그 일은 우리 기억 속에서 사라지지 않을 테니, 우린 서로를 도와야 해. 서로를 훨씬 더 열심히 사랑해야 한다는 말이야." (p56)

그럴 수 있길.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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