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언 매큐언, 『견딜 수 없는 사랑』(북북서가)을 읽고

9기_이연옥
2024-03-14
조회수 83

지난겨울 나는 2023년 12월부터 2024년 2월까지 3개월 동안 12차시 진행된 이현정 교수님 <글쓰기 강좌>를 수강했다. 이교수님을 강의를 통해 뵙고 ‘이교수의 책과 사람’이란 유튜브를 친애하는 시청자가 되었다. 나이 쉰을 넘기면서 내 마음에 찬바람이 솔솔 들어와 ‘책과 여행으로’ 나란 사람의 온도를 높여가던 차였다. 교수님의 채널은 때론 내 마음을 더 차갑게 더 뜨겁게 들었다 놨기를 반복했다. 교수님이 소개해주는 책은 다 따뜻하지만, 절대로 따뜻하지만은 않았다. 그래서 더 여운이 많이 남는 책들이 있었다. 존 윌리엄스의 『스토너』,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문맹(자전적이야기)』, 그리고 찰스 디킨스의 『위대한 유산』이 내겐 그런 책이었다. 세 권의 책은 내게 “나는 무엇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가?”라고 물었다. 책을 읽기 전과 읽은 후에 생각의 꼬리를 물고 자꾸만 떠오르는 ‘존재적 물음’에 어떤 날은 깊은 우울감에 빠지기도 했다.

 

이현정 교수님의 글쓰기 수업은 그야말로 수강생 모두에게 깊은 감동을 줬다. 그러니 내가 ‘북클럽 조이’는 신청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 아닐까? 그렇게 이교수님과 함께하는 독서 모임 첫 주제 ‘사랑’에 관한 첫 책 『견딜 수 없는 사랑』을 읽게 되었다.

 

책의 뒤 표지에 있는 문장들로 나는 이 책을 읽기 전부터 난해한 플롯을 예감했다.

사랑은 질병인가, 신성한 열정인가?

이성과 과학은 신뢰할 만한가?

믿음은 망상인가, 아니 망상이 믿음인가?

 

돌풍에 휩쓸린 헬륨 기구로부터 시작된 대담한 질문들

사랑 이야기의 외피 뒤에 숨겨둔 정교한 플롯

비밀스러운 감정과 눈먼 정열, 그리고 윤리의 파국에 천착한.

이언 매큐언 문학의 정점이자 숨은 걸작

 

“우리는 무엇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을까?”

 

이 책이 참 차갑고 어려웠다. 줄거리를 예상할 수 없는 하나, 둘, ……이십사로 구성된 각 장의 숫자에서 따뜻한 구석은 찾아볼 수 없었다. 게다가 책 표지의 연보라 색 바탕에 검은색과 황금빛 갈색 곱슬머리 남자의 뒷모습은 내 맘의 심연까지도 답답하게 만들어 버렸다.

 

나는 중심 주인공을 셋으로 보았다. 나(조)와 나의 여자친구(클래리사), 종교적 의미가 내재된 드클레랑보 증후군 조를 집착한 환자(패리)다.

 

사건의 발단은 할아버지가 손자를 태운 헬륨 기구를 태우고 비행하던 중 돌풍에 휩쓸렸고, 이를 우연히 근처에 있다가 목격한 선의를 품은 남자 넷이 달려가면서 시작된다. 누군가 위험에 빠질 것 같은 순간에 손을 내민 정의로운 사람 넷은 저마다의 상처를 입는다. 의사였던 두 아이의 아빠, 존 로건은 좋은 사람이었다. 마지막까지 기구에 바구니에서 내려지 않는 아이가 위험할 것이라는 생각으로 기구의 끈을 놓지 않아 결국 죽었다. 조는 끈을 먼저 놓은 것이 자기일지도 모른다는 죄책감으로 괴로워하는 도중에 같이 있던 패리에게 협박을 지속해서 당한다. 또 다른 둘은 자기 삶을 그럭저럭 살아간다. 죽은 아빠는 차 안에서 여자 스카프가 발견되어 아내에게 딴 여자가 있었다는 오해를 받고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어서 해명할 기회도 못 얻었다. 오해했던 부인은 용서받을 수 없는 자신의 잘못에 뼈아픈 후회를 했다. 주인공 조와 그의 여자친구는 사고를 겪은 뒤 서로에게서 점점 멀어져갔고 별거하고야 만다. 함께 겪은 사고에서 서로를 불신 반목했던 두 사람이 소설의 마지막 24장에서는 아이들을 돌보는 일을 함께하는 장면은 사랑이 회복될 수 있겠다는 기대를 품게 했다.

 

줄거리를 적어 놓고 보면 꽤 쉬운 소설인데도 불구하고 읽는 내내 어려웠다. 마지막 장을 읽고 나서야 내가 패리를 주인공 조의 망상이라고 생각한 클래리사처럼 조의 머리를 의심했기 때문에 가독성이 떨어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조가 드클레랑보 증후군을 앓고 있는 건가? 아닌가? 패리는 망상인가? 현실인가?’ 이런저런 생각이 봄 새순처럼 피어오르는 나뭇가지처럼 뻗어갔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은 부분에서 이언 매큐언의 문장에 매료됐다.

 

이언 매큐언의 매혹적인 문장들

첫 문장이 특히 매혹적이었다.

시작은 표시하기 쉽다. …이 순간, 시간 지도에 찍힌 아주 작은 점에 불과한 이순간, 나는 손을 내밀었고, 차가운 병목과 검은색 포일이 손바닥에 닿았을 때 남자의 고함을 들었다. ( p.9 )

 

이기심과 정의감을 한 문장으로 ‘우리냐, 나냐?’로 표현한 것도 인상적이었다.

우리는 칠턴스 언덕 위 3~4미터 상공에 떠 있으면서 ‘우리냐, 나냐’ 하는 해결할 수 없는 아주 오래된 도덕성의 딜레마에 직면했다.

 

삼장에서 클래리사는 조와 사랑을 나누면서 했던 말은 큰일을 함께 겪은 사람들에게 충고한다.

우린 끔찍한 일을 함께 목격했어. 그 일은 우리 기억 속에서 사라지지 않을 테니, 우린 서로를 도와야 해. 서로를 훨씬 더 열심히 사랑해야 한다는 말이야.

 

열하나 장에서는 패리가 조에게 쓴 연서에서 사랑이 준 것들에 대한 묘사는 또 얼마나 매혹적이었는지 모른다.

사랑이 내게 새로운 눈을 선사했고, 그래서 나는 명료하고 자세하게 사물을 봐요. 오래된 나무 기둥의 결, 그 아래 젖은 잔디밭의 풀잎들, 1분 전 내 손을 가로질러 기어간 무당벌레의 가늘고 간질거리는 검은색 다리들, 보이는 모든 것을 만지고 쓰다듬고 싶어요. 드디어 내가 깨어났어요. 살아 있는 느낌이 너무나 생생하고, 사랑으로 정신이 번쩍 드는 것 같아요. …잎에서 빛이 났고, 젖은 잎들을 훑고 간 손가락에서 타는 듯한 열감이 느껴졌어요. 그제야 깨달았죠. 당신이 특정한 방식으로, 그 잎들을 만지면서 간단한 메시지를 말하고 있다는 걸요.

 

314쪽의 묘사방식도 근사했다.

‘쿵쾅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고, 맥박의 압력이 어찌나 센지 시야가 맥박 리듬에 맞춰 흔들리는 느낌이었다. 클래리사를 부를 땐 ’크‘와 ’ㄹ’ 사이에서 혀가 굳은 듯 발음이 꼬였다.‘

326쪽의 클래리사의 편지에서는 패리를 더 나쁘게 만든 행동이 조였다고 말하는 장면은 둘 사이가 어긋난 문제의 원인 분석을 한다는 점에서 인상적이었다. 나였다면 분노와 실망으로 원인을 해결하지 않은 채 회복하지 못한 관계로 방치했을 것 같았다.

‘첫날부터 당신은 그를 적으로 보았고 그를 처부술 생각만 했지. 그래서 당신이, 아니 우리가 큰 대가를 치렀어. 당신이 나와 더 많은 것을 공유했다면, 그는 그런 단계에 이르지 않았을 지도 몰라.’ 그녀 말이 맞다. 내 주관적 판단으로 말이다. 그래도 조를 비난하기엔 클래리사의 잘못도 있다. 그의 말을 귀기울여 주지 않았고 심지어 그를 오해하기도 했다.

 

우리 부부도 어떤 사건에 의해 어디로 우리를 데려갈지 나는 잘 모르겠다는 생각을 종종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 부부의 삶도 생각해봤다. ‘지금까지 함께 살면서 행복했는데, 서로를 열정적으로 사랑했고 서로에게 충실했고. 난 항상 우리의 사랑은 영원히 지속될 것라고 생각했어.’ 라는 클래리사의 말은 사실 내 삶과는 동떨어져 있다. 더 나은 사람을 찾을 용기가 없고 귀찮아서 그냥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내 상상과 다르게 끝난 이 소설이 2024년 3월에 읽게 되어 다행이다. 매사 내 생각의 틀에서 벗어나서 생각하지 못하는 꽉 막힌 내 뇌 회로 한 줄을 매큐언이 뚫어줬다. 또 그가 하는 말이 들렸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끼리도 불행 앞에서는 더 위로하고, 더 사랑하고, 더 믿고 공감해야만 일상의 평온을 유지 할 수 있습니다.”

사랑을 생각해보는 책을 읽게 되어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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