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함께 그해의 봄을 잃어버렸다-적의 벚꽃

이보람
2024-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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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쯔는 내 인생의 염소에요그녀가 돌아오지 않는 이유

             추쯔를 향한 주인공 ‘나’의 영혼을 다한 사랑에 매료되어 멈출 수 없이 하룻 밤에 다 읽어 내려갔다. 나는 그가 그의 아내에게 느끼는 감정, 그녀를 소중히 대하는 모든 구절에 밑줄을 그었다. 그리고 다시 그 부분들만 모아 읽었다. 나도 모르게 속삭였다. ‘이런 사람을 만나고 싶어.’ 추쯔 역시 그의 마음을 느낀다. 지진의 충격으로 쇠약해져 가는 그녀를 위해 우곤(雨棍)을 구해 와 비 내리는 대나무 숲 소리를 내는 그에게 말한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어? 나한테 왜 이렇게 잘해줘?”  그는 그녀에게 정말 ‘잘 해준다.’ 그런데 그것이 그녀가 원한 사랑이었을까?

             주인공은 외도의 잘못을 결코 아내 에게서 찾지 않는다. 그의 겁 많은 추쯔는 정교한 함정에 빠졌을 뿐이다. 그는 애절히 그녀를 기다린다. 소설 전체에서 그녀를 향한 그의 노력은 헌신적이다. 그럼에도 추쯔는 왜 돌아오지 않는 걸까? 어쩌면 그의 쏟아지는 친절한 보살핌 속에서 그녀는 외로웠던 것일까? 돌아올 수 없는 그녀의 마음을 더듬어가며 책을 다시 읽어 보았다.

              ‘나’는 말한다. “추쯔는 내 인생의 염소에요.”     ‘나’에게 염소는 유년기의 첫 번째 꿈이자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연민이 뒤섞여 있는 존재이다. 염소는 ‘나’의 보살핌을 필요로 하고 풀을 먹여 달라며 운다. 그러나 어느날 부터 아버지가 ‘나’를 대신에 풀을 먹이고 염소는 ‘나’를 시큰둥하게 달한다. ‘나’는 무력함을 느낀다. 그리고 ‘나’의 역할을 대리한 아버지를 다시 보지 않겠노라 다짐한다. 그에게 있어 추쯔 역시 그의 보살핌이 필요한 피동적 존재로 그려진다. 그는 그녀의 어수룩함을 사랑한다. 그리고 그 옛날 아버지가 염소에게 대신 풀을 먹인 것처럼, 뤄이밍이 그의 자리를 대신하기 시작한다. '나'의 보살핌이 필요한 추쯔는 뤄이밍으로 부터 사진을 배워가며 능동적으로 피사체를 담기 시작한다. 그리고 '나'는 염소를 도둑 맞았듯이 추쯔를 잃는다. 


적은 꿈속에서 파멸시키고 벚꽃은 침대 옆에 흐드러지게 피었네: 소멸되는 적과 아름다움

            주인공 ‘내’가 적인 뤄이밍에게 보이는 적의는 깊이 사랑하는 아내 추쯔를 잃은 슬픔에 비해 나약해 보인다. '나'는 추쯔를 잃은 뒤 인생을 송두리째 잃은 감정을 느낀다. 그런데 '나'의 적을 우연찮게 까페에서 처음 대면했을 때, 슬픔, 공포, 절망 속으로 내팽개쳐 졌음에도 분노를 내비치지 않고 다만 커피를 내려 줄 뿐이다. 심지어는 자살을 시도한 적의 죽음을 바라지도 않는다. 다만 살아남아 이따금씩 그 위선 뒤에 숨겨진 조롱을 느끼며 이 세상에 영원히 그를 용서할 수 없는 누군가가 살고 있음을 기억하기를 바랄 뿐이다. 그래서 뤄이밍이 벚나무를 베어내었을 때, '나'는 비로소 벚꽃이 없는 사진을 뒤집어 적이 파멸되었다고 쓴다. 뤄이밍이 벚나무 뿌리에 소금물과 함께 흘려보낸 것은 추쯔에 대한 상실감이자 ‘나’를 향한 양심의 가책이기도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결말에서는 벚나무의 소멸과 함께 그의 적 뤄이밍도 아름다운 추쯔도 모두 사라진다.  


온갖 찬미가 모여 만든 한 곡의 슬픈 선율: 나를 닮은 사람, 친절한 가해자 뤄이밍

         소설을 다 읽고, 나는 등장인물 세 사람의 행동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뤄이밍을 향한 주인공의 분노는 왜 더 적극적으로 표출되지 않는가? 추쯔는 왜 돌아오지 않는걸까? 뤄바이슈는 왜 자신을 사랑해달라고 요청하는 것인가?

         내 영혼이 가장 가까이 닮아있는 인물은 부끄럽게도 가해자인 뤄이밍이었다. 완전히 선하지도 완전히 나쁘지도 않은 사람. 선의의 외면 아래 불의를 감추고 살아가는 사람. 미담과 선행의 찬사 속에서 가난한 신혼부부의 사랑을 빼앗는 사람, 양심의 가책을 느끼면서도 은행에서 강도에 둘러쌓인 주인공을 외면하는 사람. 그리고 그 비열함을 들키지 않는 사람. 그런 이중적인 모습이 어느정도 내 안에도 있다. 내 내면의 비뚤어진 마음을 불편하게 확인하며, 왜 그가 어린아이 같은 천진함을 가진 추쯔를 탐했는지,  그의 부도덕한 욕망의 근원을 부끄럽게 짐작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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