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라는 화두 <적의 벚꽃>

10기 이은진
2024-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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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답. 짜증. 주인공(작가)에게 제발 자기 연민에서 빠져나와 주변을 좀 보라고, 정신 차리라고 외치고 싶은 충동이 든 작품. 

작가는 프롤로그에서 ‘슬픔을 쓰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고 했지만, 결국 ‘내 인생 전체가 슬픔일 수 밖에 없소’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작가에게 미안하지만, 나는 소설을 읽으며 주인공의 처지에 동정하는 마음이 간혹 들긴 했어도 전혀 슬프지는 않았다. 다 읽고 나서는 심지어 거부감이 들었는데, ‘이렇게 슬픔을 전시하는 것에 나는 전혀 관심 없다’고 말해주고 싶은 못된 마음마저 들었다. 


작가가 여성과 사랑을 대하는 방식도 너무 올드하게 느껴진다. 여성과 사랑을 저기 어딘가의 순수 그 자체인 존재로 상정하고 동경하다가(마리아처럼), 자기 뜻대로 안 되면 겁탈하듯 품다가(창녀처럼), 그도 안되면 대체자를 찾다가(진짜 창녀), 결국 떠나버린 사랑을 영원히 기다리는 설정이라니.... 더구나 추쯔가 내 인생의 염소였다니.. 염소가 뭐였나.. 자신이 풀을 먹이던 존재 아닌가.. 아버지가 풀을 주자 더이상 자기 풀은 안 받아먹던.. 추쯔라는 사랑의 대상을 염소로 비유하다니! 이 경험이 주인공의 어린 시절 상처라는 건 알겠고, 그것이 추쯔와 뤄바이슈의 관계로 반복되었다는 것도 알겠는데, 나는 그냥.. 이런 자기연민을 못 봐주겠다. 정말. 

스스로를 인정사정없는 재벌 가족들 안에서 묵묵히 일하면서 결국 그들을 행복하게 결합시키는 아이디어(노인과 바다 프로젝트)를 내는 존재로 설정한 것도, 결국 소득 하나 없이 잃기만을 거듭하다가 슬픔을 잔뜩 머금고 그 세계를 떠나는 설정도 나는 정말 못 봐주겠다... 손발이 너무 오글거린다.

여러 다른 설정들도 다 오글거리지만, 무엇보다 <적의 벚꽃>이라는 제목이 가장 오글거린다. 


이 작품은 (나에겐) 신파다. 

작가가 맨 마지막에 ‘난 바다가 싫어요’라는 문장으로 끝맺음한 것처럼,

나도 이렇게 끝맺고자 한다. 


난 신파가 싫어요. 

   

(열심히 소설을 쓴 작가에게 미안하고, 재밌게 읽으신 분들에게 죄송해서 안 올릴까 하다가, 올립니다. 이왕 쓴 거 공유하고 싶었습니다. 혹시나 저와 비슷한 생각을 하신 분은 없으실까 궁금한 마음도 들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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