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긴 시(詩)와 같은 순애보

김선
2024-03-28
조회수 68

오늘도 갑자기 사정상 참석이 어려워졌어요.

북클럽 녹화본을 통해 뒤늦게라도 팔로업하겠습니다. 

실시간 참석은 어려워졌지만 책 후기는 먼저 공유해봅니다.


(프롤로그)
제목과 내용을 보면
벚꽃이 피기 바로 직전인 지금,
바로 이 계절에 읽어야 하는 소설이 아닌가.
'벚꽃엔딩'과 가히(?) 겨룰만 하다.
일부러 계절성을 고려해서 책 순서를 맞추신 것 맞나요?

2. 이렇게 입장 전에 대놓고 경고문을 대문짝만하게 붙인 문을 통과하게 하는 소설은 처음인 것 같다.

'슬픔을 쓰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

눈물 짜내려고 쓰는 글은 아니니 쉽게 눈물이나 흘리며 동정하지 말라는 걸까, 결국 눈물이 날꺼라고 장담하는 걸까

(본 후기)
*고전적인 순애보의 '나'
자세한 사정은 모르겠지만 사랑하던 이가 떠나고 카페를 하며 기다리고 있구나, 이번에는 사랑에 믿음이 있냐 없냐 균열이 생기냐 이런 고민은 가뿐하게 넘어버리는 순애보 차례구나 싶었다.

개인적으료 '순애보'에는 거리두고 싶어하는 그런 마음이 있다. 사랑이 자신의 전부인 양 구는 건 정말 닭살 돟는다.
그러고 보면 예전에 한참 유행했던 '순애보'가 테마인 영화들 (예: 전도연 주연의 약속, 너는 내운명 ?)도 왠만하면 피했다.

어쨌건 이번에도 '순애보'에 대한 거리두기로 주인공에 대해서도 약간은 거리를 두며 읽기 시작하지만
어느새 덤덤하게 이어지는 '나'의 이야기에 삶의 전부였던 한 여자의 존재를 받아들이게 된다.
가족도 친지도 친구도 아무도 없고, 가진 것도 아무것도 없어도 자신이 애정하는, 지키려는 존재 하나만 있으면 살아지는 게 삶인가 싶은데, 그래서
'츄쯔' 는 그에게 그냥 사랑이 아니라, 계속되는 고난과 불행 속에서 삶의 등불같았다는 걸 어떻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을까.

'내'가 가진 단 하나가 '츄쯔' 였고
그래서 그녀가 떠난 이후 살기 위해 선택한 방식이 기다리기였다고 생각했다.
의도가 아니었다고 하지만, 기다림은 복수하는 방법이 되어 복수는 완수되었고, 완수된 복수가
결국 '나'로 하여금 그녀는 오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게 했다고 본다.

적의 벚꽃이 사라진 지금
카페를 접고 떠난 '나'는
'츄쯔'를 기다리는 것 마저도 못하게 된 다음
도대체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노인은 다시 청새치를 잡으러 가면 되지만,
작가로부터도 이름을 부여받지 못하고,
한번도 이름으로 불려보지도 못한 '나'는
'츄쯔'같은 존재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이제는 100세 시대라고 하니 부디 그랬으면 한다.

*뢰이밍
작품 속에는 이름이 명명되는 몇 안되는 사람이다. 이름도 가졌고 사실상 많은 모든 걸 다 가진 그가 한 가지만 가진 '나'의 그 딱 한가지를 탐했다.
욕심이다. 자신이 가진 많은 것은 안보이고 가지지 못한 그 한가지만 보인다.
그도 그 사실을 너무나 잘 알았던 것 같다.
이런 대조가 이 소설에서는 여러 번 발견된다. 뢰이밍과 '나' 그리고 회장님과 '나'.
뢰이밍과 '회장님'이 가진 그 많은 것들, 명성. 집. 학식. 돈. 친지 등에 비해 결핍투성이인 '나'의 처지가 더 강조되어 순애보를 독자에게 설득하는 요소로서 활용되고 있다

사랑이 인생의 전부인양 구는 건 정말 닭살 돟는다라고 해놓고 이야기를 읽고 말미에 와서는
세상을 살아갈 이유가 그 어떤 것도 없는 이에게 '사랑'이 그 유일한 이유가 되면 않될 건 또 뭐냐고 생각하고 있는 걸 보면 작가가 설득에 성공한 것 같다.

*츄쯔
가장 많이 이름이 불려서, 이름은 되게 친근한데 사실은 그녀에게 대해 아는 게 별로 없다.
'나'의 1인칭 시점의 이야기기도 하지만, 사실 '츄쯔' 자신이 한말이나, 누군가가 '츄쯔'에 대해 하는 얘기라던가, 대화 등이 별로 없어서 독자는 안개속의 그녀에 대해 짐작만 할 뿐이다.
이야기 속에서는 이들간의 관계는 무척 고전적이다.
'나'는 그녀를 돌보고, 좋아하는 것을 최대한 해주려고 했던 것 같고 서로가 서로를 위했던 것 같긴 하지만, 그들 간의 소통은 과연 잘 되었던 걸까?
서로 직접적으로 대화는 하지 않고 상대방이 그렇겠지라며 넘어가는 그런 방식(?) -
'꼭 말로 해야 아나 말로 안해도 알지' - 이런 식인 듯 해서 결국 '나'의 순애보도 소통은 부재한 채 일방적인 게 아니었는지 의문이다.
소통이 부재한 채 타자(츄즈)로서 존재했기에 뭔가 일이 있었을 때 서로 균열이 생기고, 의심하고 이럴 지경까지 가지도 못하고('견딜수 없는 사랑' 에서 처럼), 말 싸움 한번 해보지 않고 사라진 게 아닌지 싶은 거다.

슬픔을 쓰려고 한 게 아니라며 대놓고 경고한 작가에게 화답하듯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서는 눈물 한방울 나지 않았다.
그래도 조금 더 지나고 나서 문득 그 대나무 빗소리가 난다던 정체도 알수 없는 그 악기가 떠오르자 좀 먹먹해진다.
그리고 길고 긴 시를 읽은 듯한 여운이 남는다.


(참조 1) 꽃 : 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


(참조 2) 이름에게 : 아이유

꿈에서도 그리운 목소리는
이름 불러도 대답을 하지 않아
글썽이는 그 메아리만 돌아와
그 소리를 나 혼자서 들어
깨어질 듯이 차가워도
이번에는 결코 놓지 않을게
아득히 멀어진 그날의 두 손을
끝없이 길었던 짙고 어두운 밤 사이로
조용히 사라진 네 소원을 알아

오래 기다릴게 반드시 너를 찾을게
보이지 않도록 멀어도
가자 이 새벽이 끝나는 곳으로

어김없이 내 앞에 선 그 아이는
고개 숙여도 기어이 울지 않아
안쓰러워 손을 뻗으면 달아나
텅 빈 허공을 나 혼자 껴안아
에어질듯이 아파와도
이번에는 결코 잊지 않을게
한참을 외로이 기다린 그 말을
끝없이 길었던 짙고 어두운 밤 사이로

영원히 사라진 네 소원을 알아
오래 기다릴게 반드시 너를 찾을게
보이지 않도록 멀어도
가자 이 새벽이 끝나는 곳
수없이 잃었던 춥고 모진 날 사이로
조용히 잊혀진 네 이름을 알아

멈추지 않을게 몇 번 이라도 외칠게
믿을 수 없도록 멀어도
가자 이 새벽이 끝나는 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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