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의 힘('적의벚꽃'을 읽고)

서석창
2024-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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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저마다의 슬픔을 간직한 외로운 존재다. 

소설 속 ‘나’는 학교 잡일꾼이었던 아버지, 교통사고로 중증장애인이 된 어머니, 아버지의 좌절과 실패, 그리고 죽음을 목격했다. 

추쯔도 어린 시절 화재로 언니를 잃은 가족사를 가지고 있고, 그녀에게 가난은 그림자처럼 따라 다닌다. 굳이 보태자면 뤄이밍과 뤄바이슈도 각자 아내와 엄마를 잃은 슬픔과 외로움을 가진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런 슬픔에도 신비한 힘이 있다. ‘나’가 취직할 때 사람들은 ‘나’가 가진 슬픔을 느끼고 그것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다.(남다른 인재, 뭐라도 해낼 사람 등),  그런 슬픔의 힘 때문일까? 마음에 상처가 있는 사람은 비슷한 상처를 가진 사람에게 감응하기도 한다.

'나’는 추쯔가 비가 오는 캐노피 아래에서 ‘나’를 향해 손을 뻗어 손가락을 구부렸을 때 외로웠던 영혼은 사랑에 빠지고 그녀와 가족을 이루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훗날 추쯔가 그녀의 불행을 얘기(화재로 언니를 잃은 사고)했을 때 ‘나’는 추쯔와의 사랑이 서로가 가진  슬픔과 연관되어있음을 직감한다.  

 “우리 둘은 어떻게 된 걸까? 너무 닮은 운명이기에 부부로 맺어진 것일까?”

‘나’와 추쯔는 자신의 슬픔을  서로에게 꺼내 보이기 어려워한다.  저마다의 슬픔의 무게는 다르고 그것을 견뎌내는 마음의 크기도 다르기에 그들의 그런 태도에 내 생각을 얘기하는 것이 조심스럽다. 하지만 ‘나’가 추쯔의 불행과 슬픔을 어렴풋이 알게 되고 거기서 서로에게서 닮은 모습을 찾았던 것처럼.(추쯔는 끝까지 염소의 행방을 몰랐지만...) 

상처를 가진 사람들이 서로에게서 닮은 모습을 찾고 서로 닮아가는 모습에 행복해 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나눌 수 있는 최소한의 온기가 아닐까.


슬픔 극복이 가장 어려운 상황은 '내가 너무 외로운데 나를 더 외롭게 만드는 사람이 내 옆에 있는 경우'다. 여성들은 그것을 ‘남편’이라고 부른다.

 ‘나’는 아버지의 죽음과 염소의 운명?에 대해 끝끝내 이야기 하지 않았다. 지진의 고통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추쯔를 두고 ‘나’는 자신이 만들어낸 행복을 쫓을 뿐이다.  "인생의 바꿔줄 프로젝트", "귀엽고 순결해야할 추쯔"

뤄이밍에게 더 큰 불행과 슬픔을 마주한 추쯔를 보며, '나'는 그녀가 잃은 순결이 자신의 무능함이고 도둑맞은 염소라고 생각했을 지도 모른다.

뤄이밍이 바라보았을 흉터를 떠올리며 그녀의 상처를 난도질한다.

그렇게 슬픔은 서로를 '견딜 수 없게' 만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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