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염소요 청새치.《적의 벚꽃》

10기 김민경
2024-03-28
조회수 73

민트색 표지에 붉은 벚꽃잎도 그려져 있다. 이정도 사랑 얘기면 ‘붉을’ 적(赤)이겠거니 짐작했다. (불타는 사랑 얘기쯤...되겠거니)

 

‘슬픔을 쓰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p.7)

표지에서 주는 인상과는 달리 첫 문장부터 예상 밖이었다.

 

슬픔을 쓰려고 한 것은 아니란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이미 슬픔이 떠올랐다.

‘~을 하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하면 할수록 더욱 ‘그 무엇’만이 또렷해진다.

 

이렇다 할 설명도 없이 뤄이밍이 자살 시도하는 묵직한 이야기로 시작됐다. (슬픔을 쓰려고 한 것은 아니란 말이지…….)

 

“이런 종잡을 수 없는 작가는 누구지? ”

왕딩궈. 1955년 생 대만작가. 생소했다. 작가 이력란도 빼곡했다. 이 작가에게 글쓰기는 생존을 위한 외침 같았다. 

살기 위한 ‘숨쉬기’랄까... 왕.딩.궈. 세 글자를 적어 보았다.


《적의 벚꽃》은 떠난 아내를 그리워하는 주인공 남자, ‘나’, 그의 아내 추쯔, 자리 잡은 중년 남자 뤄이밍, 그의 딸 뤄바이슈 넷이 얽혀 있는 비정한 사랑 얘기다. ‘먼지 두 톨’의 결합이라고 말하는 신혼 부부 ‘나’와 추쯔. ‘염소’를 키워 팔아서 아버지께 드리겠다던 꿈이 무너지면서 주인공 남자는 슬픔에 잠식된 삶을 살게 된다. 아버지의 죽음 때문이었다.

 

‘꼭 눈물을 흘리며 울어야 슬픔인 것은 아니다. 슬픔이 침묵의 형태로 나타날 수도 있다.(프롤로그 중)’p.10

 

슬픔을 침묵한 주인공 남자는 아내에게 ‘아득함’을 주고 싶었다. 자신의 슬픔을 아내에게 옮기고 싶지 않아 더욱 침묵했다.

 그가 아내를 사랑하는 방법이었다. 아내의 미소는 그의 슬픔을 덜어준다고 믿었다.

 

아내는 어떠한가. 그녀는 가슴에 흉터를 숨기고 있었다. 한 몸속에 두 가지 상반된 감정이 존재하고 있던 것이다. 

두려움이 두려워 미소를 지어 보인 것이다. 그녀의 사랑이었다.

 

이 둘은 너무 닮은 운명이다.(p.147)


요즘 세상은 좋은 사람이 되기도 어렵고 좋은 일을 하기도 어렵다. 충직한 사랑을 하는 너무 닮은 ‘먼지 두 톨’에겐 더욱 그랬다. 

아내는 뤄이밍과 불륜을 저질렀다. 그 흔한 진흙탕 싸움도 없이 아내는 사라졌다.


죄 없는 사진기를 원망한 들, 멀쩡한 벚꽃을 죽여본 들, 두려움만 더 커져 갈 것이다.

 

슬픔을 줄곧 침묵하던 남자에게 어느 날 찾아온 보라색 머리핀을 한 뤄이밍의 딸 뤄바이슈. 그녀는 무례했고, 제멋대로였다. 

영혼을 찾아주겠다며 마법놀이를 시작했다. 남자가 석연찮아하는 것을 알면서도 줄곧 까페에 찾아온다. 

딸 뤄아비슈의 사랑이다. 그녀의 충직함이다.

 

남자는 이제 더이상 슬픔을 침묵하지 않는다. 엉뚱한 뤄바이슈의 충직한 사랑 덕분에 영감을 받았다. 

과거 미숙했던 그 순간에도 진지했다는 것을 깨닫는다. 

남자의 사랑은 슬픔이 아니라 ‘염소’를 키웠던 ‘진지함’이었다. 《노인과 바다》의 청새치처럼 말이다.

 

나의 사랑도 염소요 청새치다. 초라한 삶과 현실에도 패배하지 않는 진지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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