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집-이사벨 아옌데

서신애
2024-04-11
조회수 67


영혼의 집


칠레가 정치 사회적으로 격변하는 시기와 델 바예, 트루에바 가문의 4대에 걸친 이야기를 함께 써내려간 소설이다.

작가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담겨있어 한편의 대하드라마를 본 느낌이었다. 


보수주의 정권에서 사회주의로 넘어갔다가 쿠데타로 인해 군부정권 독재까지 이어지는 

격변하는 칠레의 정치 사회적 변화와 맞먹는 변화와 이념 갈등이 클라라와 에스테반의 가정 내에서도 나타난다.

한가지 특이한점은 여성들의 계보가 이어진다는 점이었다. 

니베아-클라라-블랑카-알바로 이어지는 모계의 계보에서 사회상을 반영한 모습들을 엿볼 수 있었다. 

그래도 명문있던 가문, 경제적 능력이 있던 극보수주의자 에스테반과의 혼인을 선택했던 클라라, 

계층을 넘어서 사회주의자와 사랑을 했던 블랑카,  

사랑하는 사람과 가문의 이념 사이에서 다음 세대로서 바통을 이어받은 알바.

3대 모녀는 다음 세대를 위해서 일정부분 자신을 희생하고 주변을 도우면서 성장 해 나간다. 


이 집안 남자들은 대를 잇지 못했다. 

클라라의 두 아들은 혼인하지 않았으며(니콜라스는 중절), 블랑카의 법적 남편 또한 법적인 남편일 뿐이었으며, 

알바의 뱃속에 있는 아이도 아직 누구의 아이인지 모른다. 

이 집안의 여성이 대를 잇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며 대를 잇는다는 것은

집안의 정신을 잇는것이지 핏줄을 잇는것이 아님을, 그것이 바로 이 집안의 영혼을 잇는 것임을 이야기 한다고 생각한다. 

클라라가 집안으로 불러들인 영혼은 이전세대의 영혼들이 아니었을까 싶다. 


클라라는 집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모두 기록했다. 

기록한다는 것은 '기억한다'와 '이어간다'의 두가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잊기 쉬운 것, 지나치기 쉬운 것, 좁은 시야로만 보는 것

기록을 통해서 우리의 현재를 기억하고 과오를 깨닫고 좀 더 넓게 볼 수 있게된다. 

결국 기록은 다음 세대로 넘어가기 위한 징검다리 역할을 한다.

클라라의 기록이 알바의 기록으로 이어지는걸 보면 이 가문의 여성들의 계보는 더 이어질 것임이 분명하다. 


에스테반은 정말 폭력적인 사람이었기에 클라라가 왜 그를 선택했을까 의문이 들었다. 

그녀에게 사랑은 무었이었을까?

포용? 용서? 

나는 클라라에게 사랑은 의무라고 생각했다. 

아내로서의 의무가 아닌, 영적인 능력을 가진 자신이 이 가문에서 해야 할 역할과 의무.

클라라는 독특하고 신비한 능력을 가졌기 때문에 너무 가정을 돌보는 사람은 클라라의 영적인 활동에 

제약이 많을 수 있을것 같다. 시골에 농장이 있는 에스테반이 도시의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지 않은것,

농장에 쏟는 열정과 사업의 확장 자신의 세력을 넓히고 굳건히 하는것에 빠져있는 것, 그리고 에스테반의 누나가

자신을 끔찍히 생각해 아이와 집안일까지 도맡아 돌봐주는것,

클라라가 트루에바 가문을 선택한 이유가 되지 않았을까.  

클라라는 자신의 주관이 뚜렷한 사람이다. 하지만 그것을 강요하거나 드러내거나 하지 않지만

침묵과 무관심을 적절히 이용할 줄 알면서 나누고 베푸고 보살피는 자신만의 방법이 있다. 

미래를 보는 능력이 있어서 그럴 수 있었던걸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블랑카는 운명에 순응하는듯 보이지만 조용히 참고 기다리면서 기회가 올때를 놓치지 않는 여성이다. 

페드로를 만나서 창문을 탈출해 밤마다 나갈때도, 백작과 결혼해 백작의 변태적인 성향을 알게되었을때도

페드로를 다시 만나서 사랑을 되찾았을때도, 또 그와 함께 캐나다로 망명할때도.


알바는 주관이 뚜렷하거나 이념이 확고한 사람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할머니 할아버지 엄마와 삼촌들과 살면서 다양한 모습들 속에서 자신을 확고히 해나가는 여성이다. 

미겔과 사회운동을 할때도 미겔처럼 혁명에 큰 뜻이 있다기 보다는 사랑하는 상대를 통해 

잘못된 현실과 변화가 필요함을 인식하는 정도였다. 

삼촌과 함께 할아버지의 무기를 빼돌리고, 미겔을 숨겨주고 쿠데타에 잡혀 

고문을 당하고 강간을 당하면서 자신이 나아갈 길을 점차 찾아가는 모습을 보인다. 


[알바가 글을 쓰며 깨달은 것은 어느 것도 우발적으로 일어난 일은 없었다는 것, 

모든 것은 어쩌면 그녀가 태어나기 전부터 짜여진 운명이라는 것, 

인생은 너무 짧고 순식간에 스쳐 지나가 버려서 사건들 간의 관계를 제대로 관망하지 못하지만,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 연결이 운명으로 귀결된다기 보다는 내가 과거에 저질렀던 행동들은 돌고돌아 나에게 돌아온다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여성들과 하이메가 주변에 베푼것들이 나중에 그들에게도 어느순간에는

반드시 돌아왔었다.


이렇게 3대에 걸쳐 사회가 변화하며 이 집안 여성들도 점차 적극적이고 행동하는 모습으로 진보해나간다. 

반면 에스테반은 끝까지 포악한 성격과 고집을 이어나간다. 

또 그의 과오의 산물 (에스테반 가르시아)는 돌고돌아 에스테반에게 고통을 가져다준다. 

말미에는 에스테반도 조금 변한 모습을 보이긴 했지만 어떤 '깨달음'을 얻었을지는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내가 좋아하는 뮤지컬 레베카의 넘버중에 이런 가사가 있다. 


"여자는 더 강한 존재야 사랑을 위해 싸울 땐 

세상 모든 역경 앞에서 바다를 갈라 산을 옮겨

그게 바로 여자들만의 힘"


폭력적인 남편을 만났든, 강간을 당해 임신을 했든, 계층과 신분의 차이로 이별을 겪었든간에

한 사람을 뱃속에 품고 있다가 출산을 한다는것은

한 사람의 영혼을 품고 있다가 내보내는 것과 다름 없지 않을까. 






1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