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 슈라이버 <홀로>를 읽고..

9기_문경은
2024-06-20
조회수 20

북클럽 『조이』 2차.

≪나와 삶을 마주하다≫ 네 번째 책.


"나는 매 순간 사라져 버리는 나 자신을 감당할 자신이 있다. 그러나 동시에 이 세상의 테두리 바깥에서 나는 내 것일 수도 있었던 삶이 흘러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이방인이기도 하다." <유진목, 시인·영화감독>


이 책의 추천글 중 일부이다. 이 문장 때문에 난 이 책을 본격적으로 읽기 전부터 설레었던 것 같다.


책을 읽으면서 내가 이렇게 많은 부분 공감한 적이 있었나...?

작가는 내 마음속에 들어왔다갔나? 뭐지? 이 사람 뭐지?

살짝 흥분되는 감정을 가지고 이 책을 꾹꾹 두 번 읽었다.

살면서 문득문득 스쳐갔던 불편한 감정이 있었지만 항상 끝까지 골몰하게 생각하지 못했는데,

그런 내 생각과 감정이 바로 이런거였다고 작가가 잘 정리해 주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아직 내가 확신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약간의 힌트까지도 주는 듯한 느낌.


나는 작가와 닮은 점이 많다. 성소수자라는 것만 빼고는.

나도 40대 중반이고, 독신이다.

누구나 그렇듯 처음부터 결심한 건 아니었다.

그냥 차츰차츰 멀어져 갔다.

서른살 이후로는 내가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키운다는 상상 같은 건 해 본 적 조차 없다.

하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누군가가 나에게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인지 물으면

난 여전히 사랑이라고 대답한다. 이건 정말 진심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여행지에서 새벽산책을 하고, 벤치에 앉아 각자 좋아하는 책을 읽는 것이 내가 가장 행복한 시간이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그 이상은 불편하다. 아니 불안하다. 그냥 그렇게만 지내고 싶었다.

상대가 그 이상을 원하면 나도 슬프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내가 뭘 겁내는건지 나도 잘 몰랐다. 그런데 이 책에서 작가가 말해주었다.

난 내 삶에 대한 본질적인 확신이 결여되어 있었다.

누군가와 함께해도 괜찮을거라는 안정감이 나에겐 없다.

작가가 말하는 '잔인한 낙관주의'에 깊이 빠지지 않는 성격이라는 게 어쩌면 다행일지도 모른다.

판타지에서 깨어나는 것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혼자서도 잘 사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고는 역시 돈이 최고다ㅡ라는 뻔한 결론을 내렸다.

가족이고, 친구고, 연인이고.. 결국엔 다 남이잖아?

그래서 책 초반에, 우정 중심의 삶이라는 모델이 혹시 인생의 어느 한 단계에서만 가능한걸까? 라는 작가의 의문에 크게 공감했다.

그래 맞아 역시 우정은 겨우 그런거였어!!

내 삶에서 우정이 차지하는 비중이 작가만큼 크지는 않았지만,

그들이 둥지 본능으로 가족에 집중할 때, 공연이 다 연기되고 취소되어 내 코가 석자임에도 그들의 아이들 반에 코로나가 몇 명이래.. 하는 사실이 더 중요하게 여겨질 때,

나 또한 관계의 소실과 함께 공감의 총량이 줄어들고 있음을 느꼈다. 솔직히 매우 피곤했다.


하지만 이렇게 조금씩 뒤로 밀리는 게 기분 나쁜 것도, 이해할 수 없는 것도 아니었다.

코로나가 아니어도 이미 서로의 상황이 변하며 여러 번 겪었던 일들이었다.

그럼에도 난 해결책을 찾지 못했던 것이었다.

어디로 어떻게 가야 맞는건지 나는 더 어려워졌다.

그 때 작가가 다시 말해준다.

우정의 도움이 있어야 비로소 실제로 자신의 정체성을 찾게 된다고.

사실 난 살면서 우정이라고 통칭할 수 있는 다양한 관계에 대해 크게 최선을 다하지 않고 살았다.

그래서 지금까지 내 옆에 남아준 사람들에게 한없이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기도 하다.

1년 전쯤, 어떤 일을 계기로 내가 좋아하고 존경하는 분과 조금 가까워지면서

연인과의 사랑이 아닌 우정에 가까운 이런 관계를 이어가기 위해 노력하고 마음 쓰는 과정이 얼마나 복잡하고 어려운건지,

그게 얼마나 나를 달라지게 할 수 있는지, 

또 그게 내 삶에 사랑 못지 않은 큰 에너지가 될 수 있다는 것까지도 

부끄럽지만 40대 중반이 되어 처음으로 알았다.

세상은 어차피 혼자 사는거야 더더욱 단단한 혼자가 될거야!! 라던 내 좁은 시야를 트이게 해 준 그 분과, 

어쩌면 조금 더 유연하게 살아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믿음을 더 해 준 이 책에 난 너무나 감사하다.

그리고 더 많은 좋은 관계를 맺고 싶다는 욕심을 갖게 해 준 지난 대학로 취하다 모임이 너무너무 행복했다는 말도 꼭 남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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