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뎌야하는 사랑 (견딜수 없는 사랑을 읽고)

조혜영
2024-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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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종사가 아니라 바람이 항로를 정하는 저런 기구는 위험하기 짝이 없는 교통수단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말을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어쩌면 그래서 매력적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종할 수 없는 기구를 타 듯 우리의 삶은 펼쳐진다. 잘 계획된 일상을 산다고 생각할지도 모르나 그것도 뜬 채 흘러가는 빙산 위에 있다. 내 삶에 마음대로 되는 부분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탄생과정에서부터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는 과정까지도 단지 스스로 선택했다는 착각에 지나지 않을지도... 사랑도 삶도 정해진 항로 없이 이끌리는 대로 흐르는 대로 여기까지 와있다. 


열기구사고로 사람이 죽었다. 삶과 죽음을 따져봐야 하는 이타성의 절묘한 경계를 경험했다. 죽음의 두려움에 삶을 선택한 이들로 인해 로건이 죽었다. 로건의 죽음으로 발생한 죄책감은 겉으로 아무 상관없어 보이는 일상과 한 인간의 근본이자 뿌리 같아 보이던 사랑에까지 파고들었다.


책 속에는 여러 빛깔의 사랑이 나온다. 패리의 병적인 사랑은 누구의 망상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드클레랑보 증후군이라는 이름만큼이나 생소한 질병이라 주인공 조의 정신병이 진행되고 있는 게 아닌가를 스토리 끝까지 의심하기도 했다. 로건 부인의 사랑은 아프고 슬퍼 보였다. 아무리 사랑하며 살던 사람도 정황상의 근거로 죽음보다 더 큰 아픔을 남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조와 클래리사의 사랑은 서로 다른 사람이 만나 더 아름다움을 발하는 사랑이었다. 이성적인 조와 감성적인 클래리사의 평온할 때 굳건했던 사랑은 눈에 들어간 작은 모래처럼 날아든 작은 균열에 부서져갔다. 균열은 오랜 시간 만들어온 사랑을 좀먹고 차이를 도드라지게 만들며 사이를 벌어지게 한다. 


영원할 것 같던 사랑도 연약하다. 사랑이 의심 앞에 얼마나 쉽게 무너지는지를 봤다. 의심은 운명처럼 던져진다. 그 사랑을 견딜 수 있는지는 서로의 차이를 어떻게 받아들이는가로 결정된다. 내 사랑은 조와 클래리스를 닮아 있었다. 감성적이긴 하지만 보다 감정적인 나와 AI와 대결해도 당분간은 지지 않을 남편. 우리에게도 열기구 사건이 일어난다. 보다 가까운 죽음으로... 이젠 그만 이야기하고 싶은? 둘째가 죽었고 우리는 하나 된 것처럼 보였다. 우리 둘, 서로밖에 믿고 의지할 데가 없었다. 처음에는 하나였다. 큰 혼돈뒤 서로가 상처를 치유해 가는 방법은 확연히 달랐다. 나는 계속 함께 위로하고 이야기하며 희석시켜 치유하길 원했고 남편은 그대로 덮어야 했다. 상처가 극한에 닿으니 서로를 배려해 줄 여유는 없었다. 


클래리사는 조에게 자기 입장에서 불만을 토로한다. 패리와의 전화를 숨기고, 함께 결정했던 앞날에 대한 행로를 번복하는데 실망했다. 대화도 안되고, 혼자 생각하고, 자신을 끼워주지 않고, 혼자 괴로워하는 모습을 곁에서 보는 걸 힘들어했다. 그런 힘듦의 과정을 함께하는 것이 클래리사의 방법이었다. 내가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게 클래리사의 방법이었으니 나는 그녀와 비슷한 사람이었다. 조도 조의 입장이 있었다. 마음이란 말과 글로 표현하지 않아도 전해진다고 생각했고, 알리기 전에 명확한 증거를 찾고, 직접 해결해야 했다. 각자의 방법으로 해법을 찾아갔다. 


로건 부인의 오해는 극적으로 풀리며 남편의 죽음에 배신이 아니라 사랑만 남길 수 있었다. 가장 소설 같은 부분이다. 보통의 우리 삶에 극적인 오해는 풀리지 않게 마련이다. 이처럼 누군가 짠하고 나와 해결해주지 않는 조와 클래리사의 사랑문제에는 사랑보다 더 큰 함께 가려는 의지와 시간이 필요하다. 


enduring love 가 어떻게 견딜 수 없는 사랑으로 번역되었을지 처음에 이해가 되지 않았다. enduring속에 단순히 참는 인내보다 사랑할 수밖에 없는 열망과 열정이 포함된다고 본다면 이해가 된다. '견디는 사랑'으로는 느낌이 부족하다. 책을 읽고 한참을 머무른 후에야 도저히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운명 같은 사랑이 그 속에 보였다. 사랑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사랑"


시간은 오래된 사랑의 필수조건이다. 포기하지 않는다면 견뎌야 하고 어떤 극적인 상황도 이미 벌어진 현실 앞에는 공백의 희석이 필요하다. 시간의 치유가 지나가고 아픔이 굳어가면 지난 세월의 배려 앞에 다시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견딜 수 없는 사랑을 할 수 있지 않을까? 나처럼 클래리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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