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 사랑을 용서할 수 있을까 (견딜 수 없는 사랑을 읽고)

이혜란
2024-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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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지나간 사랑을 떠올리면 열병과 같은 순간이 많았다. 밥을 먹다가도, 은행나무를 올려다보다가도, 보도블럭 위에도, 모든 곳에 그가 있었으니. 그가 내뱉은 말 한마디를 곱씹으며 확대 해석을 하는 것도 여러 번. 그가 다른 누군가와 함께 있으면 질투까지 냈으니. 어떤 날은 그가 아파서 어디가도 못한 채, 나만이 오롯이 그를 간호라고 해주길 바랐던 때도 있었다. 사랑을 넘어선 집착과 소유욕. 사랑에 빠지면 생기는 감정일까. 그 한계선은 어디까지일까.

 

조를 향한 패리의 사랑, 패리 혼자만의 사랑이라 부르기에는 과도하다. 늦은 밤, 조에게 전화를 걸어 “당신 감정을 이해한다고 말하고 싶어서 전화했어요. 나도 같은 감정이니까요. 사랑해요.”(62쪽) 과대망상에 사로잡힌 스토커. 소설의 전반부에서부터 나는 패리의 정체를 단정 지었다. 조는 도망치고 싶었을 거고, 어떻게 서든 패리를 떼어내고 싶었을 거다. 조는 패리가 드클레랑보 증후군을 앓고 있는 걸 알고, 자신을 더욱 방어한다.

 

패리는 ‘대상이 자신을 사랑한다는 강한 망상’에 더하여, 조를 하느님의 품으로 구원하고자 한다. 아니, 어쩌면 헬륨기구에서 로건이 떨어졌을 때 용감하게 나선 조를 보고 패리는 그를 구원자로 보았을 수도 있겠다. 시신 앞에 단 둘만이 마주하는 순간. 패리는 조와의 대면이 일종의 신의 계시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패리 문제가 커지면서 나는 당신이 자기 세계로 점점 더 깊이 침잠해 들어가고 나에게서는 점점 더 멀어지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어. 당신은 미쳐있었고 외골수였고 굉장히 외로워했어. 사건을, 임무를 맡은 사람 같았지. 어쩌면 그것이 당신이 하고 싶었던 과학의 대용품이 된 건지로 몰라.”(p. 324~5)

 

과학기자인 조는 이성을 내세우며 드클레랑보 증후군을 앓는 환자를 혼자 물리치려 했다. 패리는 조를 살해할 계획을 세웠고, 이에 맞서 조는 총기까지 구입한다. 이성의 극단을 달리는 조와 맹목적 믿음과 사랑을 좇는 패리. 두 극단을 달리는 인물사이를 클래리사가 도울 수 있었을까? 조가 자신의 죄책감과 두려움을 감추지 않고 클래리사에게 그의 감정을 솔직히 말했더라면, 그리고 패리와 삼자대면을 했었더라면 상황은 악화되지 않았을까? 과학과 종교사이 클래리사가 대변하는 문학가의 역할은 무엇일까,라는 커다란 질문을 해본다.

 

병원에 갇힌 사랑. 

하지만 조를 향한 패리의 사랑은 지속될 것이다. 마치 신을 향한 믿음처럼 말이다. 누가 이 사랑을 멈출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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