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딜 수 없는 사랑 : 우리들의 모습

서석창
2024-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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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에는 ‘견딜 수 없는 사랑’이란 제목이 원제(Enduring Love)의 의미를 다 채우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패리의 사랑을 조가 견딜 수 없는 것인가? 그렇다면 조와 클래리사의 사랑은 제목으로 설명이 안되잖아'라고 생각했지만, 패리를 보며 사랑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오해와 미움, 때로는 폭력적인 모습들까지 우리들의 모습을 담고 있다고 느꼈다. 

  패리는 다른 사람(조)이 자신을 사랑한다고 믿는 드클레랑보증후군, 일명 도끼병 환자다. 패리는 조의 행동을 자신에게 보내는 ‘비밀 신호’라고 생각하고, 자기중심적 의미를 부여하며 사랑에 빠졌다.  자신의 사랑에 응답해주지 않는다고 생각해 조를 살해하려는 마음마저 먹었다.


  조와 클래리사의 사랑은 다른가? 조는 패리에게 지속적인 스토킹을 당하고 불안해한다. 클래리사는 끊임없이 패리를 이야기하는 조가 지나치게 집착하고 과민 반응한다고 치부한다. “당신의 그런 행동이 그를 그런 사람으로 만든 건지도 몰라”,  “조, 당신이 쓴 글(패리의 편지) 같은데.” 클래리사는 조의 상황에 공감하기보다 자기중심적으로 해석할 뿐이다. 

  조도 패리로 겪는 어려움을  클래리사와 함께 대화하고 의논하기보다 자기식으로 해결해 나가려한다. 그 과정에 클래리사는 없다. 중단했던 박사과정을 위해 대학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결정에서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말에 반응이 없는 클래리사의 사랑을 의심하여 그녀의 편지를 훔쳐본다. 

 클래리사는 조가 자신의 편지를 훔쳐본 사실에 화가 나서 이런 말을 한다. “심지어 서랍을 열어놓기까지 했더라. 그게 당신이 나에게 보내는 성명이자 메시지이고 신호라는걸. 근데 그게 무슨 의미인지를 모르겠다는 거야. 조, 지금 나에게 하려는 말이 뭐야?”


  이렇듯 우리는 상대방이 보내는 신호를 자기식으로 해석한다. 패리 같은 도끼병 환자와 다른 점은 우리는 서로 대화하고 소통하며 의사소통의 오차를 줄여나갈 수 있다는 점이고, 이런 노력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누구나 패리식의 사랑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클래리사의 생일파티에서 발생한 패리의 총격과 살인미수. 연이어 패리가 클래리사를 인질로 삼고 자해하던 상황에서 조는 클래리사를 구한다. 클래리사는 사건 후 조에게 보낸 편지에서 조의 말을 믿어주진 못했던 것을 미안해한다. 그리고 사족을 붙인다. “당신이 다르게 행동했다면 그보다 덜 끔찍한 결과가 나왔을 거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어.”, “우리가 힘을 합했다면 패리의 선택 방향을 바꾸게 만들 수 있었는지도 몰라.” 

  나는 경험을 통해 “미안하다”라고 말한 뒤에 ‘그런데’라는 말은 덧붙이는 것은 위험하고 자기파괴적 결말을 맞이할 수 있다고 배웠다. 맞는 말이다. 이렇게 보면 편지가 일방적인 소통 방법처럼 느껴진다. 편지는 열렬한 사랑을 노래할 때는 유용하고 아름다운 소통 방법이지만, 상대방을 배제한 체 자신의 감정에만 몰입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새벽무렵 눈물까지 흘리며 발분저작했던 연예편지는 무엇을 위함이었던가!) 힘든 일을 겪은 클래리사와 조가 만나 대화를 통해 서로의 간극을 좁혀갔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내가 쓴 글을 읽어보니 너무 조의 입장을 대변했다는 생각도 든다. 소설의 마지막 장을 넘길 때까지 조를 정신병 환자로 의심했던 자의 미안함 정도로 이해해주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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