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적 사랑 (영혼의 집을 읽고)

조혜영
2024-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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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기가 이리도 힘들까? 


요즘 세상에는 사랑도 흔하다. 쉽고 가벼워 보이기까지 한다. 만났다 헤어지고 다시 만나고... 그만큼 희생도 줄고 자신이 중요해졌다. 이 책에서 만난 사랑은 어렵고 무거워 보였다. 족쇄 같은 사랑이거나 허락되지 않은 사랑이었다. 1930년 이후부터 군사쿠데타까지의 이야기라니... 어째 우리나라의 이야기같이 들렸다. 이곳은 칠레다. 사람들의 삶이 각자가 하나도 같은 삶은 없는 것처럼 보이다가도 이따금 느껴지는 시대적 동질감은 소름이 돋는다.


지금의 솔직하고 당당한 사랑은 자유와 평등이 세상에 어느 정도 보편적으로 자리 잡았다는 증거다. 그러지 못한 시절에는 지금보다 훨씬 사랑 아닌 이유로 평생을 함께, 그것도 남자의 소유물로 살아야 했다. 에스테반 트루에바는 시작에서부터 비호감이었다. 첫눈에 반한 사랑인 로사가 독살로 죽었을 때 했던 말이 그가 여자를 대하는 태도를 말해주고 있었다. "빌어먹을! 내 손에서 빠져나가다니!" 


클라라를 만나기 전까지 여러 사생아를 뿌렸고 클라라를 만나고도 별반 달라진 것 같지 않았다. 천생이 나쁜 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클라라의 사랑은 갈구했다. 가지고 싶었지만 끝까지 온전한 자기 것으로 만들지 못했다. 돈과 신분으로 가질 수 없는 유일한게 클라라의 사랑이었다. 그도 변한다. 시대가 변했다. 민주주의가 들어오고 쿠데타로 권력을 잃었다. 권력은 권력을 가지지 못한 자들의 탑 위에 세워진다. 그 허상이 없어지고 나니 에스테반 트루에바는 그냥 시대적 산물로 보였다. 기득권력의 교육을 받고 세뇌당한 사람이 생각할 수 있는 범위는 그세상 속에서는 변할 수가 없었다. 나이 들어 괴팍한 성격과 돈 말고 다 잃은 그가 안타까웠다. 진정 소중한 것들을 지키지 못했다. 


에스테반은 욕망의 화신이고 사랑을 갈구했다면 클라라에게는 운명만 존재했다. 패드로 세군도에게 느낀 든든함 정도가 사랑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그녀에게 중요한 건 세상과 운명의 흐름이었다. 이들의 만남과 사랑도 세상으로 인해 결정되었다. 


나머지 사랑은 급변하는 세상의 어지러움을 담고 있다. 어느 한쪽은 불안하고 어두웠다. 숨고 도망치고 몰래 만나야만 했다. 이 또한 시대가 깔아놓은 시대적 배경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우리의 운명과도 같다. 


악의 고리를 끊기 위해 운명처럼 한평생을 지낸 클라라의 영혼과 그 영혼을 이어받은 알바의 용서로 이름처럼 새로운 세상의 새벽을 가져온다. 알바의 용서는 사랑이다. 자신에대한 에스테반 가르시아에대한 그리고 아빠가 누군지도 모르는 아이에대한 용서이자 사랑이다. 


인생은 너무 짧고 순식간에 스쳐 지나가 버려서 우리는 사건들 간의 관계를 제대로 관망하지 못한다... 우리는 자신이 저지른 행동의 결과를 예측하지 못하며, 과거와 현재와 미래라는 시간의 환상을 믿고 있다. (2권 p.327)

끝!




그 어느 것도 우발적으로 일어난 일은 없었다. 그 모든 일이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짜인 운명에 상응하는 것이었으며, 에스테반 가르시아도 그 일부라는 생각이 들었다. (2권 p.326)

세상에 정말 우연은 없는 것일까? 

운명은 우연의 결과론적인 이름은 아닐까? 

운명은 과거에서만 찾을 수 있다. 그렇다면 자기 합리화의 결과는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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