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저미는 사랑 (<가슴 뛰는 사랑>을 읽고)

이혜란
2024-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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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집 제목을 보자마자 결혼 전, 20대, 30대의 설익고 불안했던 순간들이 스쳐갔다. ‘가슴 뛰는’ 사랑이란 젊은이들에게나 어울릴 법한 수식어가 아닐가 싶었다. 책은 나잇대별로 사랑의 다양한 모습을 구성했다. 연애-결혼-불륜-이별 그리고 판타지적인 배우자의 죽음 이후 세계까지. 40대인 내 나이 때문일까. 나는 책의 앞쪽에 배치된 풋풋한 20대의 연애 시절 이야기 보다는 책의 후반부에 실린 죽음 앞에 그려진 <봄밤>의 알류커플과 74살의 할머니의 설렘이 담긴 <앓던 모든 것>에 마음이 끌렸다.

 

다녀와요, <봄밤>

수환이 죽었는지도 인지하지 못한 채 우는 장면으로 끝나는 <봄밤>. 읽는 내내 가슴이 절여왔다. 죽음을 향하는 커플의 서로에 대한 배려가 현실적이지 않아 마음이 아렸다. 수환이 알코올 중독에 걸린 영경에게 요양원 밖으로 나가 술을 마시도록 허락을 해준다. 이것은 어떤 사랑일까. 알코올 중독과 간경화 그리고 영양실조까지 걸린 아내에게 술을 마시지 못하게 하고 어떻게든 건강을 회복시키는 게 최선이 아닌가. 수환은 “오래 버텼어. 다녀와라”(239쪽)이 한마디를 말하며 영경이 마음껏 술을 마시고 오라며 보내준다. 


수환이 아이를 빼앗기고 술에 의지해서 살아온 연경의 고통을 이해했던 사람이었기에 가능한 일이리라. 영경의 속에 쌓인 한을 풀으라고. 술을 들이마셔 아픈 현실을 잊고 잠시나마 정신이 나가(?) 있도록 한 배려. 수환은 자신이 곧 죽는다는 걸 알았기에 죽기 전까지 영경이 원하는 걸 모두 들어주고 싶었을 거다. “자신의 병이야말로 분모를 무한대로 늘리고 있어서 자신의 값은 1보다 작은 건 물론이고 점점 0에 수렴되어 가고 있는 중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242쪽)

 

분자에 수환의 좋은 점을 놓아 점점 그 수를 키우는 것. 영경이 만족할 일이라는 건, 수환과 둘이서 병원 안에서 함께 있는 것이 아니라, 영경이 밖에서 자유롭게 하고 싶은 일- 술마시고 고함지르고 아무도 없는 방에 들어가 있는 것-을 허락해 주는 것이라니.

 

수환은 영경이 없는 상황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수환의 마지막을 영경이 지켰다면 홀로 남게 된 영경은 더 충격 받았을 듯하다. 소설의 마지막에 수환을 찾으러 병실을 헤매고 수환인지 누구의 얼굴인지 스치지만 영경은 수환의 부재를 알 수 없다. 이 장면은 안타깝지만 한편 다행이라도 생각이 들었다. 수환의 죽음을 영경이 영영 몰랐으면 좋겠다.

 

 

바스락거리는 사랑, <앓던 모든 것>

노년의 사랑 이야기를 많이 접하지 못해서 일까. <앓던 모든 것>에서 74세인 ‘나’가 사랑에 빠져 변하는 일련의 과정은 젊은이들이 사랑에 빠지는 이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게 놀라웠다.나는 나이가 들면 풋풋한 설레임은 더는 들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걸까. 스물한 살 윤오에게 반한 할머니는 조심하면서도 또 자신의 감정을 들키고 싶어한다. 윤오가 알아줬음 하는 것이다. 집에 들어가기 전에 상가 화장실에서 머리를 정리하고 얼굴에 로션과 입술에 립스틱을 바르는 모습은 천상 사랑에 빠진 사람이 상대에게 잘 보이려는 모습이 아닌가. 윤오는 할머니의 삶에 생기를 줬다. 마흔 넘은 뒤부터 “언제나 사라질 채비를 해왔”는데, 윤오를 만나고 나서, 할머니는 “태어나서, 살아있어서 다행이라고.”(274쪽)고 되뇌인다.

 

윤오에게 빠져들지만 할머니는 자신의 ‘늙음’이 윤오에게 묻어나길 바라지 않는다. 윤오의 몸속에서 다시 태어나고 싶어하는 할머니를 보면서 소설에는 나오지 않지만 그녀에게 과거 어떤 일이 있었는지 궁금해 졌다. 남편을 혹은 어린 자식을 안타깝게 잃었던 걸까.

 

생명력 있는 윤오에게 다가서기 두렵고 그 젊음에 손끝하나 감히? 손대지 못한 채 거리를 두는 할머니. 윤오가 여인에게 입맞춤하는 장면을 애써 외면하려 할머니의 시선은 이곳저곳을 헤맨다. 아스러지는 봄밤 풍경 속 할머니의 뒷모습이 너무 쓸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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