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하는 힘'에 대한 '고민'

서석창
2024-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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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사랑이란 물음에 응답하려는 마음, 의지'라고 이야기 한 부분과 '부부에게는 사랑이 모습을 바꾸며 서로 속에 존재 하며 그것이 쌓여 자기인생이 된다'는 말은 평소 나의 생각과 일치하는 부분이여서 공감이 되었다. 또한, 젊은이가 문화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는 '고령자가 문화를 만들어야 하는 시대'라는 생각은 MZ세대가 아닌 내가 변화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겼다.

하지만 ‘고민하는 힘’을 읽으며 생기는 불편한  ‘고민’이 책에 대한 몰입을 방해했다.

가장 고민 되었던 것은 이 책에서 저자가 얘기하는 고민들이 ‘오늘날에도 유효한가’하는 의문이었다. 결론만 먼저 얘기하자면 몇몇 공감이 가는 얘기들이 있었지만, 주로는 진부하거나 올드하다고 느껴졌다. 또한, 나쓰메 소세키와 막스베버의 작품들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은 관련 책들을 읽어보지 못한 나로서는 공감보다는 반감이 생기기도 했다.(대체 이 ‘소세키’가 누구야?! 어감에 주의해주시기 바란다.)

특히, 공감이 가지 못했던 부분은 ‘자아’와 ‘일’를 설명하는 방식이었다. <1장 나는 누구인가?>에서 작가는 근대과학과 합리주의 및 자유의 시대에 이르러 전통적 가치관과 단절됨에 따라 사회적 연결은 해체되고, 인간관계는 고립되었으며, 자유는 개인주의와 자아의 비대화를 초래하고 사회 해체를 가속화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자아는 타자와의 ‘상호 인정’에 의한 선물이며 타자를 배제한 자아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또한, <6장 무엇을 위해 일을 하는가?>에서 ‘일을 한다’는 의미를 ‘타자로부터의 배려’ 즉 사회속에서 일하며 자기의 존재를 인정받고 재확인하기 위함이라고 주장하였다.

나는 ‘자아’와 ‘일’에 대한 작가의 시각이 불편했다. 좀 더 깊이 있는 논의를 기대했는데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는 명제를 확인하는데 그치는 것 같아 맥이 풀렸다. 최근에 발간되는 여러 심리학 도서들이 오히려 타인의 인정이나 평가가 개인에게 미치는 악영향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울 때 자아는 더욱 성장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 않는가. 우리가 타인을 의식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은 그것이 생존에 유리하기 때문에 사회적 동물로 진화해왔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존재의 의미를 생각하고 '내가 바라는 나'의 모습을 그려나가는 것이다. 


<3장 제대로 안다는 것은 무엇일까?>에서 작가는 과학(근대적 知)의 파편화되고 인간의 한쪽 면만을 합리화하는 주지화(主知化) 문제에 대해 이야기한다. 사람들이 과학 속에서 객관성을 찾고 그 인과율에 따라 세계를 정리하면서 전통이나 민간신앙, 종교나 형이상학은 ‘비과학적’인 것이 되었으며, 과학이 가르쳐 준 것은 인간다운 가치관이나 도덕관념은 관계가 없는 것이었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인간다움이나 도덕관념 등은 원래 과학으로 설명하기보다 인문학과 철학적 영역에서 다루는 부분이 아닌가? 작가는 근대과학에 대한 막연한 경계심을 가지고 있고, 전통적이고 비과학적인 것에 대해서는 조금은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19세기 초 나쓰메 소세키와 막스 베버의 작품들을 기준으로 이야기하기 때문에 그런 부분이 조금 더 부각되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과학에 대한 회의적 시각을 버리고 과학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면 나를 발견하고 세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나도 과학을 너무 싫어했다.)

얼마 전에 읽었던 유시민 작가의 “문과 남자의 과학공부(부제: 나는 무엇이고 왜 존재하며 어디로 가는가?)”에 대한 책을 인용하는 것으로 마무리하고자 한다. 한번 읽어보시길 권해 드린다.

“인간과 사회에 대한 많은 질문에 대해 과학의 사실과 이론을 활용하면 더 그럴법한 대답을 할 수 있는 질문도 적지 않다. 그런데도 인문학자들은 과학에 관심이 없다. 과학이 새로 찾아낸 사실을 이해하고 받아들이지 않으면, 과학과 소통하고 교류하기를 거부하면, 대학의 인문학은 존재의 근거를 잃을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 이것은 인문학의 표준이다. 그러나 인문학 지식만으로는 대답하기는 어렵다. 먼저 살펴야 할 다른 질문이 있다. ‘나는 무엇인가’ 이것은 과학의 질문이다. 나에게 그 대답은 분명하다. ‘나는 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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