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로 가는 여정 (나와 마주서는 용기를 읽고)

조혜영
2024-05-23
조회수 73

나는 나를 잘 모른다. 결혼 전의 나는 손발이면 충분했다. 결정은 사회적 시선이나 부모님에 의해 이루어졌다. 남들이 좋다는 걸 하면 되는 게 삶이었다. 일상은 이어져있지만 손발로 존재하는 나에게 분절된 작은 단계로 느껴졌다. 중학교의 단계 그중에도 1학년 중간고사를 남이 정해준 기준으로 넘으면 되었다. 인생을 살아간다는 의미나 내가 왜 사는지는 물론이고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도 생각해 본 적이 별로 없었다. 뭔가 흥미에 이끌렸다가 금세 식어버리는 스스로를 그냥 원래 그런 나로 규정했고 나 밖의 기준에 따라 사는 것이 잘 사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꿈도 없었다. 꿈을 꾸려면 경험이 많아야 한다. 겪어봐야 하나의 마음속 영역이 생긴다. 그림을 보지 않고 화가를 꿈꿀 수 없고 디지털 프로그램의 달콤함을 단 한 번도 맛보지 않고 디지털의 무한한 세상에 뛰어들 마음이 들기란 어렵다. 물론 가능은 하다. 다수가 원해서 그 당시의 대세를 따라 뭔지도 모르고 시작할 수는 있다. 내 직업도 그렇게 형성되었다. 어릴 적부터 비교적 삶과 가까이에서 경험할 수는 있었지만 그것이 되길 원한 적은 없었다. 싫어한 적도 좋아한 적도 없는 무감각한 분야였다. 내 꿈은 부모님에 의해 만들어졌다. '의사가 되면 얼마나 좋을까.'에서 시작해 '의사가 되어야 한다.'로 바뀌어갔다. 그리고 사회가 원하고 부모님이 원하는 의사가 되었다. 


문제는 그 지점에서 시작되었다. 시험단위로 쪼개져있던 일상이 비슷비슷한 날들로 바뀌어가면서 내 머릿속은 내가 왜 이러고 살고 있는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다른 일을 할 수가 없었다. 이전까지 삶에서 타인에 의해 설정된 목적의식이 명확했기 때문에 다른 꿈, 다른 경험은 없었다. 사춘기 때 겪었어야 했던 심적 방황을 자식까지 낳은 후 마흔에서야 처음 시작했다. 


시작하고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내가 나를 몰랐다. 내가 뭘 좋아하고, 뭘 잘하는지 생각해 본 적도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자기만의 강점을 딛고 살아가는 사회에서 갑자기 맨발로 혼자 서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이캔유라는 공부 공동체에 운명 같은 우연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곳에는 자신을 찾아가고 싶은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거기서 다수가 원하는 바는 책을 잘 읽고 글을 잘 쓰는 것이었다. 외적인 기준에 의해 규정된 내 일을 벗어나 도망 온 곳에서도 나는 타인의 기준을 살피고 많은 사람이 원하는 게 잘하고 싶었다. 


읽고 쓰는 삶. 이게 내가 좋아하는 일인지, 타고난 성실성으로 하다 보니 잘해지고 그러다 보니 좋아 보이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것도 온전히 내가 미친 듯하고 싶은 일인지는 모르겠다는 것과 현실에서 재능이 있는 사람들에 비교해 채울 수 없는 실력의 간극이 있다는 부분만 명확해진다. 그냥 나는 좋아하지 않는 일을 하고 취미로 읽고 쓰는 사람이었다. 


여전히 내 한계에 작동하고 있는 구조는 부모님이었다. 벗어나려고, 독립하려고 발버둥 치고 있지만 부모님의 실망이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현실과 타협하는 이유였다. 일은 점점 더 족쇄같이 느껴졌다. 일의 세계에서 내 능력을 개발할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당연히 이 일을 하는데 개발해야 할 능력에 대해서는 고민해 본다는 생각도 안 했다. 그냥 고생하면서 배운 그것을 소모하면서 최소한의 일을 하고 적당히 월급 받는 게 내 사회생활 목표였다. 


오랫동안 내 삶을 지배당했다는 억울함과 그 반감으로 현실의 삶을 가능하게 해 준 내 직업을 등한시했던 부정적인 마음부터 바로잡아야 했다. 새로 만난 해내고 싶은 일에 조급해진 마음은 다독여야 했다. 세상 일은 모두 복잡하게 얽혀있다. 단 하나의 원인으로 발생하는 일이 없는 것처럼 하나의 문제를 해결함에 있어서도 여러 방면의 전환이 필요하다. 생각, 관계, 시간배분, 열정. 모두 변해야 한다. 어쩌면 다른 사람이 되어야 할지도... 그럼 그것은 진정한 나일까? 진정한 나를 어떻게 알아볼 수 있을까? 내 삶을 살아보자고 뛰어든 바다에서 휩쓸리고 휘둘리는 중심 잃은 부표가 된듯하다.


이는 삶의 분절이 사라짐에서 온 문제로 보인다. 단계가 없어진 일상에 다음단계로 가기 위한 일정이상의 노력이 사라진 결과였다. 분명 많은 일이 일어났지만 지난 10년 동안 지각할 수 있는 변화는 자녀의 키가 컸다는 것과 내가 나이 들었다는 것뿐이었다. 하루 살고 이틀 흩어진 시간이 아니라 그날들이 모여 변화하고 있는 나를 감각하고 싶다. 그 시작에 가이드가 되는 책이다. 나와 직면하고 진짜 나를 알고 타인과 세상 속에서의 나를 확인하는 방법이 책을 읽는 며칠 만에 완성될 수 없다. 어쩌면 겨우 시작한 정도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마지막 저자의 말이 위로가 되었다. 

나는 아직도 여전히 잠재력에 도달하는 일이 무엇인지 알아내기 위해 노력 중이다. 사실 나 자신도 언제쯤 완전히 내 잠재력에 도달하게 될지 확실히는 모른다. 하지만 나는 결코 도달하지 않길 바란다.

<나와 마주 서는 용기> 이 책은 나를 멈춰 세웠다. 잘못된 길로 들어서지 않았을까 불안해할 필요가 없다는 말로 들렸다. 우리가 선택하는 각각의 길중 잘못된 길은 없다. 중요한 것은 멈추지 않고 계속 가고 있다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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