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다니엘 슈라이버)- “자기 구제의 시간”

이여진
2024-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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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은 늘 누군가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어렸을 때는 부모님, 형제, 친구, 이모들, 결혼 후에는 아이들과 주변 학부형들, 시댁식구들, 그리고 입사 후에는 회사 사람들까지 내 주변은 늘 사람들로 북적였다.

중년이 되자 주변사람들의 요구에 맞추며 사느라 나 자신을 잃어버렸다는 자괴감이 들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나는 어떤 사람인지 생각해볼 겨를도 없이 인생의 반을 보냈다. 혼자이고 싶었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홀로"는 매우 매력적이면서도 도발적이었다.

그런데 79년생 동성애자, 독일 태생인 작가의 “홀로”와 72년생 워킹맘, 한국태생인 내 인생의 “홀로”는 공통점이 있을까?

나는 그 공통점을 외로움에서 찾았다.

물리적으로 혼자 살지 않아도, 주변에 사람이 많아도 우리는 외롭다. 다행이 ‘외로움은 질병이 아니라 감정’이라고 하지만, 오래 지속되는 절박한 외로움은 아마도 우울증과도 연결될 것이다. 그리고 작가가 언급한 것 처럼 외로움의 가장 큰 어려움은 외로움이 수치심과 죄책감, 절망과 같은 감정을 동반하고, 타인에게 뿐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도 거리를 두게 만든다는 것이다.

우울증이 오면서 내 외로움은 가족들과 회사 동료들에게 거리를 만들었다. 외로움이 시야를 흐리게 한다고 했던가(p. 99, 뇌과학자 조반니 프라체토-친밀한 타인들). 나는 별 것 아닌 말에 상처받고, 민감해하고 불안해했다.  내가 믿고 의지했던 이상적인 가족들과 회사에서 틈들이 발생했고, 객관적으로는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상적인 일이었지만, 내가 만든 세상에서는 일어나서는 안된다고 믿었던 일들이었다.

(예를들어, 엄마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우리 가족은 모두 크리스마스에 모여서 가족 파티를 했다. 이제 아무도 그런 것을 챙기지 않고 나는 가족이 붕괴되고 있다고 느꼈고 이제 크리스마스가 싫어지기까지 했다. 엄마가 없는 추석과 구정에 친정에 가면 마치 폐가같다. )

저자가 나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준 것은 “문지방 상태”라는 것을 언급하면서 부터이다. 인생의 단계는 익숙했지만 단계에서 단계로 넘어갈 때, 즉 하나의 과정이 끝나고 다음 과정이 시작되는 단계에서 불특정과 모호함의 시간이 시작된다는 것이 새로웠다. 내가 늘 “질풍노도”의 시간으로 언급했던 것들이 이론적으로는 문지방 상태인 것 같다.  “친정 엄마가 없는 가족에 익숙해지기 까지의 시간, 상처 후 외로운 삶에 적응하는 친정 아빠를 이해하는 시간, 이제 다 큰 아이들에게 친구같은 엄마가 되야 하는 시간, 임원이 되지 못한 부장의 새로운 역할 정의”같은 것들이 나에게는 문지방 상태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끝이 보였다. 이 문지방 상태만 잘 보내면 나는 다음 단계로 넘어가 다시 안정적인 삶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나는 병가 상태이다. 3개월의 휴직기간을 얻었다. 휴직을 시작하면서 나는 일기장에 “3개월 휴직기간은 나에게 어떤 의미인가?”라고 크게 썼다. 아직 답을 찾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 책에서 찾았다.

“자기 구제의 시간”

나는 이 문지방 상태의 시간동안 새로운 나를 찾을수 있도록 나를 돌보는 “자기 구제의 시간”을 만들어갈 것이다.

나도 작가처럼 아침에는 운동을 하고(서울숲 산책이나, 구청 필라테스), 격주로 북클럽을 통해 나를 성찰하는 시간을 갖는다. 매일 일기를 쓰고 여행기록을 하고, 미술관을 가면서 그동안 하지 못했던 것들을 부지런히 하고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원하는 것만 하고 내가 원하는 것만 보면서 나만의 성을 더 굳건히 쌓아가는 것은 아닌지도 심각하게 고민했다. 하지만 북클럽을 통해 내가 볼 것 같지 않았던 책을 보고,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듣는 연습을 하면서 ‘나를 깨뜨리는 기회’도 갖게 되었다. 내가 안정이 되니 타인을 받아들일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휴직 전, 나는 내 문제에 너무 오랫동안 몰두하느라 주변 사람들의 어려움과 감정에 둔감 했었다. 힘든 상황이 큰 벼슬이나 된 것 처럼 주변사람들에게 외롭고 힘드니 건드리지 말라고 온몸으로 표현했다. 페이스 북을 닫고, 카톡 친구들을 최소화하고, 아주 가까운 사이가 아니면 연락을 두절했다. 그런데 이 문지방의 시간에서 나는 깨달았다. 나의 외로움이 그들을 그렇게 대할 수 있는 권리도, 면죄부도 아니라는 것을….

이제 한달 남짓 남은 내 “자기 구제의 시간”에 나는 내가 처한 상황을 부인하지도 않고, 그 뒤에 숨지도 않고 불확실함에 무기력하지도 않고 이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단계로 나아가는 삶을 찾아갈 것이다.

때때로 아니 생각보다 자주, 좌절과 외로움의 시간이 올 것이다. 하지만 잘 안될 때는 기다리고,   잘 안 될 수 있음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결별”의 시간을 갖을 것이다. 지금까지 내가 잘못해서 잃어버린 것으로 생각했던 수동적인 관점에서, 가질 수 없을 때는 스스로 놓아버릴 수도 있다는 능동적인 결별의 방법을 찾아갈 것이다. 

나에게 자기 구제의 시간이란, 나를 돌보면서 나를 알아가는 시간이며 동시에 주변 사람들에게 다시 내 마음의 문을 여는 시간이었으면 한다. 

끝까지 읽고 책을 다시 보니 제목을 다시 써보고 싶다.

“홀로”에서 “홀로 또 같이 살아가는 법”

결국 홀로 사는 것은 자신을 돌보며 타인을 받아들이는 삶이라고 작가는 이야기 하고 있는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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