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만의 방을 찾아서

김선
2024-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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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 퇴근하고 나서도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카페에서 한 두시간씩 멍하니 앉아있다가 가던 날들이 있었다.
그 이후 한 동안은 뻔질나게 해외로 여행을 가서 혼자 걷고 걷고 또 걸었다.
'홀로' 있을 수 있는 공간을 찾아 헤메이던 시간들이었다.
호텔방에 멍하니 혼자 있는게 정말 좋구나라고 느끼던 어느 날 이제는 진짜 집에서 나와야 겠다고 결심했던 것 같다.
집을 보러 다녔고, 대출을 끼고 작은 아파트를 계약을 해버렸다. 그리고 나서 부모에게 말했다. 통보였다. 나는 집을 샀고 이제 거기서 이사가서 살거라고..

내 부모는 아파트를 샀다는 것에 찬성하느라 바빠서 집을 나간다는 것에 대해서는 별 말이 없었다. 잘했다 잘했다 안그래도 그러면 어떠냐고 얘기하고 싶었다고...
내가 집을 나가는 것을 그것으로 더이상 설명없이 당연한 일이 되었다.
월세, 전세가 아니라 집값의 반 이상이 대출이지만 집을 덜컥 사버린 것은 사실 은연 중에 집을 나가는 것에 대한 왈가왈부하고 싶지 않아서 그런 효과를 노린 것이었다.
서른 중반 즈음이었다.
(십여년 전 길고 긴 부동산 침체기여서 가능했던 얘기이고 이율이 높을 때여서 이자도 많이 물었는데 사는 동안 역시나 집값은 전혀 오르지 않았고, 팔고나니 폭등했다. ㅡ.ㅡ.)

사실 중학생 시절부터 이미 집을 나서고 싶었다.
부모로부터 독립을 해야겠다고 계속 생각했고, 대학에 가고 부터는 부모에게 더이상 금전적인 지원을 받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실제로 받지 않았다.
어쩌다보니 운이 좋아 출신고에서 주는 장학금으로 등록금을 충당하고 아르바이트를 해서 내 용돈을 썼기에 가능했다.
내 부모는 그닥 눈치가 없는 것 같았지만, 더이상 금전적인 지원을 받지 않는 이상 나에게 간섭하지 말라는 무언의 경고였다.
그래도 주거는 어찌할 수 없어서 견디다가 3학년 때 통학하기에 너무 멀다는 핑계로 학교앞으로 자취를 나왔다.

그러다 대학을 졸업하고 잠시 취업했다가 대학원에 가고 재취업하면서 자취는 유야무야되고 부모님댁으로 들어가 지낸 지 6~7년 만에 다시 나온 것이었다.

그렇게 이사를 나와서 그 집에 '홀로' 살면서는
주말에 아무것도 안하고 거실에서 오후에 잠시 낮잠을 자고, 음악을 들으며 책 읽는 것만으로도 그렇게나 행복했다. 무엇보다 밤마다 카페를 찾아서, 멀리 다른 나라의 호텔방을 헤메이지 않아도 되었다.

돌이켜보면 이십대부터 삼십때까지 내게 가장 중요했던 목표는 학업도 운동도 연애도 결혼도 아니었고 자신만의 독립적인 생활의 영위였다.

대놓고 얘기해 본적은 없는데 이를 귀신같이 눈치채고 본인은 결혼을 일찍하고 싶은데 본인과 결혼해주지 않을 것 같다고 이별을 고하고 다른 여자에게 간 남친도 있었다. 그때는 무슨 비겁한 핑계냐며 무척 화가 나기도 했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알게 되었다. 그때 그 남친이 내게 이별을 고하지 않고 예쁘게 계속 만났어도 나는 그와 결혼을 해주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걸.
그를 많이 좋아했고 아꼈지만, 그보다는 내가 더 중요한 그런 사람이라는 걸.

부모와의 분리가 왜 그리 중요했을까.
가치관, 성향, 취향의 차이 등등과 내말을 제대로 들어 주지 않는다. 뭐 이런 건 그 시대의 부모면 당연한 것일테고 결정적인 것은 결국 부모의 불화였다.
나의 부모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결혼했을까 싶게 열심히 싸웠다. 그런 가족이 우리 집만은 아니지만 부모간의 관계와 불화가 내 일이 되어야 하는게 싫었다. 매일매일 살얼음판 같았던 시절도 있었고 그냥 별일이 없어도 그닥 좋지만은 않았던 것 같다.

부모와 떨어져 지내고 나서부터 겨우 그들을 좀더 객관적으로 볼수 있었고 어떤면에서는 조금 이해하기도 연민이 생기기도 했다. 그래서 비로소 부모를 위해 뭔가를 챙길 수 있어졌다.

그 둘은 그 이후로도 개와 원숭이 사이 같았고,
지금은 나이가 들어 한쪽은 치매로 한쪽은 거동이 힘들어져 각각 다른 요양원에서 지내고 있어 우리 가족에게는 나름 평화가 찾아온 상태다.
(다른 걱정거리가 생겼을지라도)
적어도 우리 남매에게는 그렇다.

부모로부터 분리되고 싶다는 것이 이유의 모두는 아니지만 그 시작인 것은 확실하고 분리의 방식이 '홀로' 온전한 독립적인 생활이었던 것은 나의 선택이다.
유사한 상황에서 다른 선택을 하는 이들도 많다는 걸 알기에 그 선택은 나의 기질과 관련이 깊다고 할수 있을 것 같다.
그럼에도 가끔 금슬이 좋은 부모 밑에서 자랐으면 나 같은 기질의 사람도 지금과 다른 선택을 하게 되었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홀로'의 시작에 대한 내 얘기는 결국 '스몰 트라우마'와 연결이 된다.
'홀로' 있을 수 있는 시간이 소중했던 나는 이제 그런 시간을 가진 지, 그럴 수 있는 공간을 가진지 꽤 되어서인지 혼자 떠나는 여행을 굳이 가지 않아도 되고, 스스로를 감당하는 것만으로도 버겁다고 생각하던 것에서 변화되어 반려냥과 매우 많은 수의 반려식물을 품을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앞으로는? 두고 볼 일이다.

Ps.
책을 읽으면서 처음에 쓰려고 했던 내용은
작가가 말하는 외로움. 친구 관계. 취미. 코로나 등 저자의 목차를 따라 나는 어떤지.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를 메모를 하며 읽었는데 저자와 비슷하다고 느끼거나 동감이 되는 부분과 아닌 부분들에 대한 것이었다.

외로움은 어디에 언제 어떤 상황으로 홀로 있느냐에 따라 다르다고 생각했고, 연인, 부부 관계처럼 친구 관계도 영원하지 않고 변화하며 어느 관계던 적절한 친밀감과 거리가 중요하다... 등등
그렇지만 결국에는 내가 왜 홀로 살고 있을까로 오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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