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와 닭의 이야기" - 영혼의 집/ 이사벨 아옌데

이여진
2024-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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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와 닭의 이야기"                                                                                                                         영혼의 집/ 이사벨 아옌데


이 소설을 끝까지 읽고 눈물이 났다. 왜 눈물이 나는지 나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내 눈물의 의미를 찾고자 며칠을 고민하며, 글을 썼다 지웠다를 반복했다.

결론적으로 내 눈물은 많은 해설가들이 언급하는 여성들의 삶에 대한 공감은 아니다. 그것은 모든 사람들의 영혼의 집이었던 길모퉁이 큰 집에서 유일하게 영혼의 위안을 받지 못한 에스테반 트루에반의 삶에 대한 깊은 동정과 연민이었다.


내 관점에서 이 소설은 「여우와 닭」에 대한 이야기다.

시종 일관 권력을 휘두르는 폭력적 여우, 에스테반 트루에바와 그를 둘러싼 닭의 무리들이다. 그 닭들은 암탉인 트루에바 집안의 안주인들이었다가, 소작농들이었다가, 좌파였다.

하루는 페드로 가르시아 노인이 밤마다 닭장 안으로 들어와 계란을 훔치고 병아리를 잡아먹는 여우에 맞서 싸우기 위해 암탉들이 힘을 모은 이야기를 블랑카와 페드로 테르세로에게 들려주었다, 

암탉들은 더 이상 여우의 횡포를 참고만 잇을 수 없다고 결론 짓고는 여우가 들어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러다가 여우가 닭장 안으로 들어오자 길을 차단한 후 여우를 포위하고는 덮쳐서 정신없이 쪼아 대 여우를 반쯤 죽여 놓았다.

"그러자 여우는 암탉들에게 쫓겨 꼬리를 내리고는 정신없이 도망쳤지."

 페드로 테르세로는 오후 내내 여우와 암탉들의 얘기를 되새기면서 깊은 생각에 잠겼다, 어쩌면 그 순간 페트로 테르세로는 어른이 된 것일지도 모른다  - 248p-


【암탉들의 집/ 영혼의 집】

이 집의 안주인은 클라라, 블랑카, 그리고 알바이다.

이들 모두 그 당시 시대상에 맞지 않게, 몰락한 귀족, 좌파 운동가인 소작농의 아들, 그리고 가난한 고아와 결혼을 했다.

이들과 결혼한 트루에바 집안 여성들은 세대를 거듭할수록 적극적으로  사회에  참여 한다.

니베아는 여성 참정권을 위해 투쟁했고, 클라라는 소작농들 아이들을 위한 학교를 운영했다. 블랑카는 다운증후군, 소외된 계층을 위한 교육을 했으며, 여자들이 직업을 가질 수 있도록 조직을 구축했다.

마지막으로 알바는 적극적으로 사회 운동에 뛰어들어 군부독재에 맞서는 사람들의 망명을 도왔다.

이 여성들의 주요 활동 무대는 길모퉁이 집이었고, 그래서 길모퉁이 집/트레스 마리아스는 에스테반 가족들과 소외받은 사람들의 영혼의 집이었다

그들은 여기서 치유받고 안식을 얻었다.

이 집에서 유일하게 영혼을 치유받지 못한 사람은 에스테반 트루에바였다. 어머니로부터 버림받고 첫 사랑의 죽음으로 상처받은 그 영혼은 권력과 돈을 통해 치유 받고자 했으나, 그 모든 것이 부질없이 된다. 결국 에스테반의 영혼을 치유한 것은 손녀딸 알바였다. 그 불 같은 성정을 그대로 받아준 어여쁜 손녀딸만이 할아버지 영혼의 안식처였다. 그리고 죽음을 앞두고서야 길모퉁이 집은 에스테반의 영혼의 집이 되었다


클라라의 영혼은 나와 함께 있지 않았다. 클라라가 나를 두려워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우리의 생활은 지옥 그 자체였다 –p.308-

 그 후 클라라는 죽을 대까지 다시는 남편과 말하지 않앗다 그녀는 남편의 성을 사용하지 않앗으며, 이십년 전 바리바스가 도살용 칼로 잔인하게 살해되엇던 그 끔직한 밤에 에스테반이 자신의 손가락에 끼워주엇던 가느다란 결혼 금반지도 빼버렸다,

이틀후에 클라라와 블랑카는 트레스 마리아스를 더나 수도로 돌아갓다, 에스테반은 굴욕감과 분노로 치를 덜면서도 자기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무엇인가가 영원히 파괴되었다는 느낌을 떨쳐 버릴수가 없었다. – 349

“알바는 클라라 외할머니가 모퉁이 큰집의 영혼이라는 것을 알았다”

 

【소작농들(닭들)과 에스테반 트루에바(여우)】

에스테반 트루에바는 트레스 마리아스에서 그야말로 못되고 포악한 여우였다. 지배와 피지배를 명확히 구분하고 그들을 길들였으며, 어떤 예외도 두지 않았다.

그 포악함과 잔인함은 결국 업보가 되어 그에게 돌아온다. 소작농들은 두려움과 증오를 함께 키웠고 그 결과 페드로 테르세로가 전파하는 사회주의 사상에 동조한다. 군부에서 농장을 되찾은 후에도 떠난 소작농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에스테반과 강간당한 판차의 손자 에스테반 가르시아는 군부 경찰이 되어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손녀 알바를 무자비하게 고문한다.


"아니다 사회주의와 마찬가지로, 자선도 약자들이 강자들을 착복하고 무릎을 꿇게 하려는 수작일 뿐이야."

"그게 자연의 섭리야. 우리는 밀림 속에서 살고 있어."

"그래요. 그건 법칙을 만드는 사람들이 아버지처럼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늘 그렇게 되지는 않을 겁니다." – 95 (2권)



【군부(여우)와 에스테반 트루에바(닭)】 

정치적으로도 굳건한 자리를 잡았던 에스테반 트루에바는 사회당이 들어서자 민주주의를 수호한다는 명분으로 미국과 협력하여 군부를 지원한다. 하지만 군부가 쿠데타에 성공하면서 예상과는 달리 여우에서 닭의 위치로 전환된다. 그는 군부 여우들에게 지배를 받았고, 처음으로 피지배자인 닭이 되었고 잡혀간 손녀를 꺼낼 수 없는 처지가 된다.

결국 손녀를 꺼내려고 사창가 주인인 소토의 도움을 받는다.

그렇게 닭들의 도움으로 손녀를 구한 에스테반 트루에바는 이제서야 닭의 무리가 되어 알바가 주인이 된 영혼의 집으로 들어간다. 이제 그 집은 에스테반을 받아들이고 편안한 안식처가 된다


"트루에바 상원의원은 밤낮으로 아이들과 여자들이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문전걸식 하는 것을 보고는, 다른 사람들처럼 아예 그들을 보지 않으려고 문을 닫거나 블라인드를 내리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대신, 블랑카에게 매달 주는 생활비를 올려주면서 그들에게 줄 따뜻한 음식을 항상 준비해 두라고 시켰다 – 238/2권-


마치며.....

이사벨 아옌데의 영혼의 집은 내가 그린 적극적인 여성들의 스토리는 아니었다. 격동의 시기와 가부장적인 시대를 헤쳐가며 살아가는 여성들은 맞다. 하지만 그들의 삶의 시작과 사상의 변화는 남성들에게서 시작한다.

클라라는 에스테반의 재산이 있었기에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할 수 있었고, 블랑카는 페드로 페르세오에게 영향을 받아 사회주의에 참여했으며, 알바는 미겔과 함께 하며 군부에 저항하였다.

책의 초반 클라라와 시누이 등장까지만 해도 마거렛 미첼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떠올렸다. 남북전쟁속에서 가족의 땅 "타라"를 지켜내는 삶을 사는 스칼렛을 기대했던 것 같다.


이제 눈물로 돌아가보자. 나는 왜 마지막에 울었을까?

격변의 세월속에 영혼의 집의 안주인들을 모두 떠나 보낸 에스테반 트루에바의 삶의 허무가 느껴졌다. 그토록 지키고자 했던 사랑하는 사람들은 모두 떠나고 알바만이 죽음을 지켰다.

 "에스테반 트루에바는 광신적이고, 폭력적이고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이었지만 어느 누구보다도 가족과 전통, 사유 재산, 질서의 가치를 잘 대표하는 사람이었다 – 112/2권-

결국 그는 외로운 여우에서 동지가 있는 닭으로 삶을 마쳤을까. 

아니면 닭들에게 쪼여서 죽음을 당한 것일까. 

아니면 닭과 여우는 결국 화해를 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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