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집>-천년을 살듯이, 단 하루를 살듯이

김경순
2024-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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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에 읽은 <견딜 수 없는 사랑>과 <적의 벚꽃>은 연인이나 부부간의 사랑이었다면 <영혼의 집>은  비극적인 운명까지 수용하고 살아내는 이야기이다. 저자는 사랑의 폭과 넓이가 얼마만큼 될 수 있냐고 질문하는 것 같다.  사랑의 범위가 비극적인 운명으로까지 확대된다. 연약한 존재와 삶 자체를 긍정한다. 


제목인 ‘영혼의 집’은 주인공인 트루에바 가문을 상징한다. 에스테반의 부인 클라라가 불러낸  혼령으로 가득찬, 마침내 클라라가 영혼이 되어 떠도는 '모퉁이 큰 집'이다.  주인공들의 사랑은 세대를 거치며 점점 넓어 진다.  에스테반 트루에바는 본인의 욕망에만 충실하고, 딸 블랑카는 소작인의 아들을 사랑하며  손녀 알바는 원수까지 용서한다.  클라라는 육신으로 혹은 영혼으로 그 모든 세대를 함께한다. 영혼으로 영원히 살아간다. 


바라바스가 바다를 건너 왔듯이  운명은 그렇게 무심히 우리에게 들이닥친다.  외할아버지의 악행에 대한 업의 고리도  손녀 알바에게는 그렇게 운명적이다.   '클라라는 세상은 눈물의 골짜기가 아니라, 신의 우스갯소리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신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것을 우리가 괜히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그녀의 주변에는 늘 환한 웃음이 그치질 않았다. (2부 p91)’를 통하여  클라라가  주체적으로 운명을 수용하는 힘의 원천을 알 수 있다.  그녀는 운명을 수용하고 기록으로 남길 뿐이다. 


클라라의 삶을 증언하는 노트라는 기록이 없었다면 에바의 화해와 관용은 힘이 없었을 것이다.  기록을 통하여 우리는 영원히 살게된다. 단 하루를 산다면  극한의 유한성으로 사랑만으로 살아 갈 것이다.  100년이 채 안되는 인생을 살기에 우리는  업의 고리를 만든다.  기억보다 기록은 강하다.  삶을 기록함으로써 다음 세대는 선대의  야만적인 불행한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고  조금씩 진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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