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뛰는 지 잘 모르겠다. 질문만 늘어간다.

김선
2024-04-25
조회수 70

*새로운 사랑을 첮아 떠난 엄마
본인에게는 사랑이지만 그것이 타인에게는 상처를 주는 행위가 될 때, 이해의 충돌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소설의 모녀의 경우, 이해 충돌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었을까? 모녀가 아니라도 그 남편은?
답은 없다. 그냥 개개인별로 선택만 있을 뿐.
딸이 나이가 들어 그녀의 엄마와 유사한 상황에 처하면 그녀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할까? 
기존 경험으로 인해 사랑을 포기하는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에서 메릴 스트립과 같은) 선택을 할까 아니면 엄마를 닮는다고 유사한 선택을 할까. 아무도 모를 일이다. 
나에게 묻는다면? 솔직히 잘 모르겠다. 
소설 속 엄마같은 선택은 왠만한 사람으로선 쉽지 않다는 얘기 외에는 말하기 힘들다.

누가 누구에게 잘못했고 아니고에 의미 두지 말자
선택과 이로 인해 감당해야 할 결과가 있을 뿐이고 선택별로 감당할 게 다를 뿐이다.

한편으론 사랑이 뭐길래 하고 묻게된다

*70대에 젊은이가 눈애 들어오다.
소설 '은교'는 읽은 적 없고, 영화는 봤다. 
나이 든 남자 어르신이 젊은. 상상이지만 어린 여성을 탐한다. 
여성은 힘들고 외로워서 피난처가 필요하고 
어르신은 호의겸 동정겸 피난처를 제공한다.
우리는 이미 그가 사실은 그렇게 나이들지 않았다는 걸 잊을 수 없기에 충분히 젊은 박해일이 노인 분장을 하고 연기하는 것도, 중간 중간 회춘한 모습으로 등장하는 것도 (억지로 설득하려고 드는 것 같아서) 그닥 맘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이 소설에도 편안하게 마음을 열 수가 없다. 경계부터 하게 된다. 
계속 경계하다가 끝이 났다.

한편 남녀가 바뀐 순간, 다른 불안이 움튼다. 
이 할머니 괜찮을까.

* 영의 미련? 사랑? 집착? 무엇?
'영'이던 사람이던 미련일랑 갖지 말자. 그냥 훌훌 털어버리자.

남아있는 정념이 사랑인지 아닌지 따지지 말자. 

*죽음을 함께하는 사랑
악동뮤지션은 노래한다.
'어떻게 이별까지 사랑하겠어. 널 사랑하는 거지' 

어떻게 죽음까지 사랑하겠어. 널 사랑하는 거지.

죽음에 이르는 과정에서 무너지는 이를 옆에서 온전히 지켜보는 것은 참 힘든 일이다. 
육체적 정신적으로 무너져가는 부모를 보면서, 부모가 아니라 사랑하는 이면 나을까 아니면 더 힘들까를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무너져 가는 자신을 지켜보는 것은 어떠한가.
어떤게 가장 힘들까를 묻는 것은 두렵다. 

소설 속 커플이 이 둘다(스스로를 그리고 상대방을 지켜보는 것)를 함께 해냈다는 것을 알겠고 그건 정말 대단하다고 인정한다. 
하지만 나도 그러고 싶다고 차마 얘기는 못하겠다. 
너무 무너지기 전에 어느 날 조용히 가고 싶다. 

여러개의 소설을 읽으며 여전히 계속 질문만 하게 된다. 
질문들 중 어느 하나에도 제대로 답을 할 수 없다.
질문 그만!!! 하면서 책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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