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뛰는 소설 감상문

강미
2024-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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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를 도울 수 있는 사람은 나 자신뿐! (‘괜찮아, 니 털쯤은’을 읽고)

 

주인공이 원숭이라는 설정의 가장 기발하고 재미있었던 소설이다. 슬픔에 빠져 바나나만 편식하던 주인공은 인간으로 살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한다. 매일 아침 남들보다 일찍 일어나 면도를 하고, 운동을 하고 책을 읽는다. 이런 노력으로 점점 인기남이 되어가고 좋은 직장에도 취직한다. 하지만 절박했던 고백에도 불구하고 첫눈에 반한 그녀와의 사랑은 실패로 돌아간다.

 

제목을 보고 긍정적인 결말을 떠올렸다. 괜찮아, 니 털쯤은! 첫 번째, 상대가 그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결말, 두 번째 그녀도 사실 원숭이였다는 결말. 내가 상상할 수 있는 경우의 수는 이 정도였다. 드라마의 한 장면만 보고도 앞, 뒤 내용은 물론 등장인물들의 성격까지 모두 알아맞히는 동생과 달리 나는 드라마를 봐도, 영화를 봐도 도통 내용을 눈치채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제목에 또 속았다. ‘괜찮아, 니 털쯤은. 다른 여자는 그런 너를 이해해 줄 거야. 일단 나는 아니야!’ 여자는 고백을 듣자마자 원래 그러려고 했다는 듯 이별을 고한다. 여자는 떠났고 남자는 전보다 더 열심히 운동을 하고 책을 읽어서 날이 갈수록 스펙이 좋아지고 인기남이 된다.

 

일단 원숭이 주인공은 나보다 훨씬 더 잘살고 있다. 건강을 위한 식단, 운동과 독서를 이렇게 꾸준히 할 수 있다니 대단하다. 이제 그에게는 털 콤플렉스를 극복할 수 있는 자신감이 필요하다. 나는 예전에 삭발을 하는 ‘개척형’ 대머리 남자와 소개팅을 했었다. 부모가 아무리 설득해도 절대 가발을 맞추지 않았다. 실제로 그를 만났을 때, 약간 살집이 있는 얼굴은 결이 곱고 팽팽했으며 민머리는 기름을 바른 듯 엄청나게 반질거렸다. 그때 나는 지금보다 훨씬 어렸고 그는 양복을 차려입어 더욱 나이 들어 보였다. 이탈리안 레스토랑에 마주 앉았을 때 우리를 쳐다보는 주위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그는 정말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면 그때 가발을 맞추겠다고 했다. 스스로도 고집이 세다고 말하는 그를 보며 나라면 그를 설득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사랑하는 남자에게 가발을 쓰라고 강요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다. 대머리보다 그의 고집이 더 어렵게 느껴졌다.

 

원숭이 인간에게는 미안하지만 ‘나를 구원해 줄 수 있는 이는 오직 나 자신밖에 없었다.’라는 말에 동의한다. 스스로 당당해질 때 콤플렉스는 더 이상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2. 이혼에 대한 예의 (‘봄밤’을 읽고)

 

수환과 영경은 이혼 후 경제적, 정서적인 문제로 힘들어하며 죽지 못해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수환은 위장 이혼을 하자는 부인의 말을 믿었다가 모든 재산을 잃고 파산한 후 신용불량자가 된다. 영경은 짧은 결혼 생활에서 얻은 아들을 전남편과 시부모에게 속아 빼앗기고 알코올 중독에 빠져 직장을 잃는다. 두 사람은 늦은 나이에 만나 서로를 의지하지만 수환은 가난 때문에 류마티스 치료 시기를 놓쳐 합병증까지 얻고, 영경은 알코올성 치매로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아들을 그리워한다.


둘은 요양원도 같이 들어간다. 영경이 떨리는 손으로 안경을 끼고 수환에게 책을 읽어 주고, 수환은 외출을 나서는 영경의 키스를 자신의 입 냄새 때문에 거부한다. 서로에 대한 깊은 사랑이 있지만, 몸이 더는 견디지 못한다. 수환은 독한 진통제를 맞고 의연한 모습으로 마지막 외출을 나서는 영경을 보내고, 영경은 수환이 죽은 후에야 완전히 정신을 놓아버린다.


둘을 이렇게 내몬 상황이 가슴 아프다. 정신적으로 무너져 내린 두 사람의 사랑은 그저 서로를 버티게 해 줄 뿐이다.

 

수환은 기술이 있지만, 파산 후 제대로 된 경제 활동을 하지 못한다. 영경과 12년이나 함께 지내면서도 그저 술에 취한 그녀와 함께 있어 줄 뿐이다. 술을 마시러 요양원에서 외출을 나가는 영경을 말리지도 못한다.


영경은 경제적인 문제는 없지만, 마음의 구멍이 너무나 크다. 언니들은 아들을 빼앗긴 후 고군분투하는 영경을 도와주지 않았다. 포기하라고, 차라리 잘된 일이라며 기도나 하라는 언니들에게 영경은 얼마나 서운했을까? 그들을 대하는 영경의 차가운 태도에서 마음의 깊은 상처가 느껴졌다. 내가 영경의 언니가 되어 포기하라는 말 대신 그녀를 응원해 주고 싶었다.


최근 유튜브에서 이혼 인증사진을 모아놓은 숏츠를 보았다. 한때 부부였던 남녀가 환하고 통쾌한 표정으로 이혼 기념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들의 후련한 표정은 이혼 후에도 여전히 그들의 인생이 온전할 거라는 믿음을 갖게 한다.

 

숏츠는 이혼 후 회복 불능의 상태로 내몰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음에도 상처를 극복하지 못하는 봄날 커플과 더욱 극명하게 대비되어 보였다. 이혼하더라도 상대방의 인생에 치명타를 날리는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또 상처를 받았어도 극복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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