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개인적인 3인칭 전지적 작가시점” - 나와 마주서는 용기 (로버트 스티븐 캐플런)

이여진
2024-05-22
조회수 97

나는 25년차 회사원이다.

입사 3년차까지도 어리버리해서 주변 분들이 “저게 사람이 될까”하며 걱정을 많이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내가 생각한 회사 생활과 내가 생각한 내 일만 열심히 했다. 그래서 왜 좋은 평가는 매번 술 마시고 상사들과 잘 놀아주는 다른 놈들이 가져가는지 몰랐다.

그래도 운이 좋아, 훌륭한 선배님들께 업무를 배웠고, 심한 열등감과 밥값 못하는 것을 혐오하는 못된 성질 덕에 과장, 차장, 부장까지 무난히 왔다.  매번 승승장구를 한 것은 아니지만, 업무에서 인정 받았고, 인정 못받으면 받을 때까지 잠 안자고 일했다. 그러면서 성과가 쌓이고 급기야 임원을 꿈꾸게 되었다.

하지만 임원은 물 건너갔다.

몇 번이나 119에 실려가며 일해 성과를 냈지만, 유학파가 아니어서, 이제는 나이가 너무 많아서 승진에서 누락되었다. 나를 밀어주던 임원은 이제 곧 내 승진이 눈앞에 보일 때 즈음 갑자기 발병하여 퇴사를 했다. 이후 나는 속칭 ‘끈 떨어진 연’ 신세가 되었다.

다시 날아보겠다고 죽어라 일했지만 선배들이 있었던 임원 자리에 어느 날부터 동기가 오더니,  작년부터는 후배들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이제 회사에서 내 임원 경력은 끝났다는 소리다.

설상가상으로 늘 지지해주던 버팀목인 엄마가 돌아가시고, 올해 초 아빠의 치매까지 겪으면서 급기야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심한 우울증, 공황장애의 재발로 결국 병가를 냈다. 병가라니… 패배자가 되어 레이스에서 낙오되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고, 회사에 대한 분노, 배신감으로 감정이 조절되지 않았다.

그래서 이 책은 첫 장부터 엿 같은 책이었다.

한장 한장 읽을 때 마다 “누가 그걸 모르냐?”, “뻔한 소리 하고 있네.”, “그래 너 잘났다. 이책쓰고 강연해서 얼마나 벌고 더 출세했냐?”, “하버드대 명강의라구? 하버드도 다 되었군. 이런 속물 같은 책을 명강의라고 하다니…”라며 나를 모르는 저자에게 혼자 소리를 질렀다.  (가끔 남편이 축구 볼 때 내가 한심하게 쳐다보던 딱 그 장면처럼…)

1/3즈음 읽자 도저히 읽을 수가 없어서 다른 책을 집어 들었다.  회사 교육장에서 하는 것 같은  뻔한 소리를 계속 읽는 것이 화가 났다. 

다른 사람들도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과제 게시판을 들어가보니 첫번째 독후감이 있었다. 이 책을 잘 받아들이고 본인의 계획도 세우게 되었다는 소감이었다.

정말? 진짜? 어느 부분이? 왜?

그것이 궁금해서 읽기를 계속했다. 내가 비뚤어져 저자의 메시지를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 같기도 하고, 북클럽에서 이 책을 지정한 이유가 있을 것이고, 무엇보다 중고로 어렵게 구매했는데 노력이 아까왔다.

“과거의 나와 솔직한 대화를 나눠라”

말 그대로 나와 마주서는 용기가 필요했던 챕터다.  왜 나는 이렇게 화가 나 있는 걸까를 생각하며 읽었다. 이 모든 상황은 내가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해서 발생한 것 같다.  “어떻게 나한테 이럴수가 있느냐.”라는 화를 품고, 그 분노를 표출하는 것이 내 권리인 것처럼 내 주변 동료, 선후배들을 불편하게 했다.

“기회를 잡는 것도 능력이다”

이제 반백도 넘었겠다, 난 회사에게 바라는 것이 없다. 회사가 나한테 이러면 안되지, 그럼 나도 어떻게 할 수 있는지 보여주자 라는 생각이 강했다. 하지만 그것이 현명한 처사였을까?

영화 ‘인턴’의 로버트 드니로 처럼 멋진 선배가 되어 출세에 상관없이 내 몫을 하고 싶었지만, 결국 내 행동은 현명하지 못하고 감정적이었다. 그리고 그 감정을 나도 돌보지 못하고 병가를 냈다. 내가 없는 회사가 얼마나 잘 돌아가는지 두고 보자 라는 마음도 컸다.

병가 3주차, 회사는 내가 없어도 잘 돌아 간다.

오히려 이제 내가 병가가 끝나고 내가 왜 다시 회사로 가야 하는지, 이 병가를 통해서 나는 어떤 시간을 보내야 하는지 고민해야 한다.

나는 왜 다시 회사로 가야 하는가?

내가 이 일을 사랑하고, 어이없게도 회사와 회사동료, 선/후배들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나는 왜 일해야 하는가?

출세 때문에 일할 시기는 지났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있고, 회사가 아직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면 나는 여기서 그 일을 계속 하고 싶다.

나는 왜 이토록 이 책에 화를 냈을까?

막장드라마도 아닌 자기개발서적을 보면서 화를 내는 이유는 아마도 나도 내가 억지를 부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 저자가 자꾸 꼬집어서 이야기를 했기때문인것 같다.  아니다.  나는 작가가 아닌,  나에게 화가 난 것일수도 있다. 

6개월간 동굴속에 갇혀 있는 기분이었다. 사방이 막혀서 답답하고 언제 나갈 수 있을지, 어디서 이 어둠이 끝날지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지금의 나를 3인칭 전지적작가 시점에서 바라볼 수 있었다.

이제 냉정하게 보자. 그리고 출세가 아닌, 좋아서 하는 일을 하자. 그 일이 회사에 있다면 회사에서 하고, 하다가 회사에 없다면 다른 곳에서 하자.

강상중이 그러지 않았는가.

“인간이라는 것은 자기가 자기로 살아가기 위해 일을 합니다. 자기가 사회 속에서 살아가고 있어서 좋다는 실감을 얻기 위해서는 일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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