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기후변화 사고실험] 갑자기 바닷속 아파트 단지가 사라졌다

너에게도 집이란 소중해

조개집을 마련해 짝짓기에 성공한 두줄베도라치

사진: 조개집을 마련해 짝짓기에 성공한 두줄베도라치

얼마 전 다큐를 보다가, 물속 생명들이 부동산에 애면글면하는 것에 다소 놀랐다. 물속 생명들‘도’ 짝짓기를 하고 알을 낳고 지친 몸을 쉬려면 조개껍데기나 수초가 필요하다. 집 값이 비싸서 결혼을 미루는 사람들처럼, 물고기들도 집이 없으면 짝짓기가 힘들어진다.


빈 조개껍질을 발견한 두줄베도라치 수컷은 운이 좋았다. 풍랑에 모래를 뒤집어쓰긴 했어도, 지느러미로, 입으로 부지런히 모래를 퍼내고 신부를 맞을 준비를 하는 베도라치의 모습이 귀여워서 가슴이 간질거릴 정도였다.


갑자기 바닷속 아파트 단지가 사라졌다

사진: 몇년사이에 바다속 숲(모자반)이 사라진 바다


두줄베도라치는 운이 좋았지만, 도루묵들은 그렇지 못했다. 울진 앞바다 도루묵들은 심해에 살다가 겨울이 되면 산란을 위해 수면 가까운 곳으로 이동한다. 보통은 모자반 숲 사이에 알을 붙이는데, 지난 몇 년 사이 기후변화로 바다의 온도가 올라가 한류성 수초인 모자반이 모두 사라졌던 것이다. 


바위가 드러난 바닷속은 사막처럼 보인다. 당황한 도루묵들은 이리저리 헤매다가 바위틈에 버리듯이 알을 낳기도 하고, 인간이 부려놓은 어구에다 알을 붙이기도 했다. 어느 날 잠실의 아파트들이 몽땅 사라진다면 우리는 어디서 살고 먹고 쉬겠는가, 도루묵들이 느낀 감정도 아마 이와 비숫하지 않았을까? 도루묵들은 궁여지책으로 그물이나 통발에 알을 낳았다. 사람들이 건져 올린 그물에 붙은 알들은 햇빛에 말라죽고, 엄마들은 통발 안에 갇혀 죽었다. 


사진: 수초가 사라진 바다, 통발에 알을 낳다 갇혀버린 도루묵


서식지가 사라진다는 것의 의미


인간의 활동으로 인해 다른 생물들의 서식지가 파괴된다, 박쥐가 전염병을 더 많이 옮기는 것도 우리가 박쥐의 서식지를 줄이기 때문이라는 얘기를 종종 듣는다. 듣기는 했지만, 나는 여태 그 속에 담긴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했던 듯하다. 


서식지란 삶의 터전이다. 물속 생명 입장에서는 조개나 산호가, 모자반 숲이, 풍부하던 플랑크톤이 사라지는 것이고, 우리 입장에서는 어느 순간 내 집이 사라지고, 아파트 한 동 한 단지가 사라지고, 일하던 기업이 증발해 버리는 것에 비유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일이 불과 몇 년 사이에 갑자기 일어난다면, 과연 우리는 이런 충격을 견딜 수 있을까? 물속 생명들은 영문을 알지 못한 채 맞닥뜨린 상황에 더욱 당황하고, 생존을 위해 어떻게든 노력하다가 좌절할 것이다. 그들의 잘못이 아님에도 스스로 노력이 부족했다며 자책할지 모른다.


열심히 일해도 언제 내 집을 가질 수 있을지 알 수 없다며 좌절하는 우리들이, 다른 생명의 서식지를 파괴한다는 것의 무거움에 대해서는 너무 둔감했던 게 아닐까? 어느 날 인천이 물에 잠겨 아파트들이 버려지게 되면 오늘을 떠올리며 역지사지를 실감할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