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기후변화 사고실험] 세상에 새 옷이 없어진다면

제가 북아프리카의 어느 나라에 살 때, souk(쑥)이라는 현지 시장을 종종 찾았습니다. 쑥에는 각종 생필품과 옷을 파는 상점과 가판대가 늘어서 있었는데, 유럽에서 가져온 중고 옷이나 신발도 많았습니다. 중고 팬티와 스터킹까지 집게로 걸려 있었어요. 우리나라 동묘시장처럼, 발품을 팔면, 그리고 운이 좋으면 괜찮은 녀석을 건질 수 있었어요. 그때 산 몇천 원짜리 구두와 블라우스를 10년이 지난 지금도 애용합니다. 


우리는 털이 없어서 자꾸 새 옷이 필요한 걸까요? 다른 옷을 입으면 다른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고, 원하지 않아도 특정한 옷을 입어야 하는 상황들도 있습니다. 옷을 사면서도 옷장 안에 있는 옷들이 아른거리고, 죄책감에 찔끔거리지만, 어김없이 새 옷을 사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합니다. 


유럽연합에서는 내년부터 의류업체들이 생산 후 폐기하는 의류와 액세서리의 종류와 양을 공개하도록 강제한다고 합니다. 쉽게 사고 쉽게 버리는 것을 패스트 패션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할 수 없게 말이죠. 


그래서랄까, 그래서만은 아니지만, 최근에 빈티지 옷가게에 가서 옷을 샀습니다. 키가 190쯤 되는 주인장이 정성스러운 손길로 다림질을 하는 편집샵도 있었고, 큼큼한 냄새가 나는 창고에 행거를 끌고 다니며 옷을 고르고 무게로 가격을 매기는 곳도 있었습니다. 명품옷들을 몇만 원에 살 수 있는 곳도 있더군요. 멋진 옷도 많았어요. 팬티와 스타킹만 아니라면 중고 옷가게도 꽤 가볼 만합니다.


언젠가 미래에,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드디어 절감하고, 거의 모든 옷이 재사용되어야 하는 그런 날이 올 수도 있지 않을까 상상을 해봅니다. 모든 옷가게는 중고 옷가게가 됩니다. 그 옆에는 수선샾이 성업을 합니다. 녹여서 다시 3D프린터로 성형할 수 있는 경우에만 새 옷을 만들 수 있게 되지 않을까요?(실제로 이번 파리 올림픽에서 ON이라는 스위스 신발브랜드에서 이런 신발을 만들어 협찬했다고 해요).


 미래에도 우리는 특별한 날, 우울한 날, 멋진 옷을 입고 싶을 것이고, 이유도 없이 옷을 바꾸고 싶을 겁니다. 우리의 욕망과 모순은, 쉽게 바뀌지 않으니까요. 새 옷이 아니라도 나를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우리는 찾을 수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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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가 나와 세상을 바꿉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