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썬, 당신은 핸드폰을 바꾸고 싶습니다.
갑자기 핸드폰이 느려진다, 무상수리보증기간이 막 지나니 딱 고장이 난다, 우연일
수도 있지만 기업들의 계획일 수도 있습니다. 기업이 제품 수명을 일부러 짧게 설계해서 소비자가 더 빨리 새로운 제품을 사도록 유도하는 것을 계획적 진부화 (Planned Obsolescence)라고 합니다. 계획적 진부화는 1920년~1930년대 산업화가 본격화되면서 기업들이 더 많이 팔기 위해 제품의 수명을 인위적으로 제한하기 시작하면서 등장했습니다. 유명한 초기 사례는 '포이베스 카르텔(Phoebus cartel/1924)', 국제적인 전구 제조업체들이 모여 전구 수명을 인위적으로 1,000시간으로 제한하기로 합의했던 것이죠. 기술적으로는 전구 수명을 더 늘릴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요. 비교적 최근인 2017년에도 애플이 배터리 노후도에 따라 기기 성능을 의도적으로 저하시킨 적이 있었고(애플 배터리 게이트), 엡손은 프린터 잉크가 남아있는데도 잉크부족 경고를 보내거나 프린터 작동을 멈추게 해서 새로운 프린터를 구매하도록 했던 사례가 있습니다.
최근에는 계획적 진부화에 대해 문제의식이 커지고 있고 애플도 배터리 게이트에 대해 2,500만 유로의 벌금을 내야 했죠. 하지만, 지속적으로 새로운 제품을 자주 구매하는 것, 그것이 현대 자본주의 경제를 돌아가게 하는 힘이고 기업들이 추구해야 하는 가치라는 생각이 지난 100년을 지배했었습니다. 최근에서야 심각해진 기후변화로 인해 제품을 얼마나 친환경적으로 만들고 얼마나 오래 쓸 수 있느냐가 중요한 질문이 되었습니다.
EU가 먼저 시작한 에코 시장
EU는 2023년부터 제품이 얼마나 친환경적으로 만들어지고, 사용, 재활용되어야 하는지 규정을 만들었고(CBAM, ESPR), 그 기준에 충족하지 못하면 세금을 내거나 심하면 EU 내에서 유통하지 못합니다. 2026년과 2027년에 이 규정들이 본격 시행될 예정이라서 우리나라 기업들도 부산하게 대응방안을 준비하고 있죠.
CBAM(Carbon Border Adjustment Mechanism)은 "탄소 국경 조정 메커니즘"이라는 뜻입니다. 간단히 말해서, EU(유럽연합)가 다른 나라에서 들어오는 제품들에 대해 "이 제품이 만들어질 때 얼마나 많은 탄소가 배출되었는지"를 따져보고, 탄소 배출이 많다면 탄소배출권으로 내야 하는 추가 세금을 부과하는 제도입니다. 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나라의 제품은 비싸지니까, 기업들은 더 친환경적으로 만들려 노력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예를 들어, 커피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양의 탄소가 배출되는데, 주로 질소비료의 사용이나 커피 재배를 위해 열대우림을 훼손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탄소 배출이 많은 커피는 EU로 수입되면서 CBAM 때문에 세금이 붙어 가격이 올라갑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가격이 덜 오르는, 탄소 배출이 적은 다른 커피 브랜드를 찾기 시작하는 거죠.
ESPR(Ecodesign for Sustainable Products Regulation)은 "지속가능 제품을 위한 에코디자인 규정"이에요. 쉽게 말하자면, 제품을 더 오래 쓰고, 재사용하고, 재활용할 수 있도록 만드는 규정입니다. 섬유(의류·신발), 철강, 알루미늄, 가구, 타이어, 세제, 페인트, 윤활유, 화학물질, 정보통신기술(ICT) 제품에 대해, 내구성, 재사용/재활용 가능성, 수리 용이성 및 환경 발자국 정보를 공개해야 하고, 이를 충족하지 못하는 제품은 EU 내 유통이 불가능합니다. 2027년부터 디지털 제품 여권(DPP) 부착을 반드시 부착해야 하고, 미판매 제품을 버릴 때도 공시해야 하며, 아예 일부 제품은 폐기를 금지합니다.
예를 들어, 스마트폰이 쉽게 고장 나거나 재활용이 어렵다면, 이 제품은 EU에서 퇴출될 수 있습니다. 더 튼튼하고 오래 쓸 수 있는 스마트폰을 만들지 못하면 그 기업의 주식은 떨어질 가능성이 커집니다. 많은 양의 옷을 폐기하는 패스트 패션기업은 환경을 중시하는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게임의 규칙이 바뀐다.
저탄소 제품으로 바꾸는 데는, 특히 그 제품을 만드는 에너지부터 제품 생산, 유통, 재활용까지 전체 과정이 달라지는 데는 상당한 노력과 진통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물론, 저탄소 전환에 성공하는 기업들이 많아진다면, 내구성 있는 제품들이 더 많아진다면 장기적으로 보면 소비자들에게도 이익이 되겠지요. 하지만 단기적으로 소비자들은 제품 가격이 비싸지는 것을 경험할 테고, 우리나라와 같은 수출중심국가들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할 경우 수출경쟁력이 약화될 수 있습니다. 때문에 기후변화 관련 정책들이 새로운 무역장벽이 되지 않을까 걱정하기도 합니다.
예상되는 단점과 우려가 있다고 하더라도, 저탄소 사회로의 전환은 더 이상 미룰 수가 없습니다. 유럽뿐 아니라 미국도 유사한 규정의 도입을 검토하고 있죠. 즉, 세계 무역의 게임이 규칙이 바뀌고 있고, 이에 얼마나 잘 적응하느냐가 중요한 것이죠.
탄소 배출이 많은 방식으로 철강을 만드는 나라에서 EU로 철강을 수출한다면, CBAM 때문에 가격이 올라가서 EU의 기업들이 그 나라의 철강을 사는 대신, 탄소 배출이 적은 다른 나라에서 철강을 사게 될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탄소 배출이 많은 나라들은 결국 그들의 제조 방식을 개선하거나, EU 시장을 잃게 될 가능성이 큽니다. 그 결과, 세계 각국의 기업들은 탄소 배출을 줄이는 방향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게 되겠죠.
우리나라도 EU로 철강을 많이 수출하는 나라입니다. 하지만 아직 신재생에너지 비율은 10%에 불과합니다 (OECD 평균 34%).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 공급할 전력도 LNG(액화천연가스) 열병합 발전소 6기를 건설해 공급할 예정이라고 하는군요. CBAM이 천연가스를 저탄소 에너지로 인정할까요?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언제까지 인정할까요?
게임의 규칙이 바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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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가 나와 세상을 바꿉니다.
레드썬, 당신은 핸드폰을 바꾸고 싶습니다.
갑자기 핸드폰이 느려진다, 무상수리보증기간이 막 지나니 딱 고장이 난다, 우연일
수도 있지만 기업들의 계획일 수도 있습니다. 기업이 제품 수명을 일부러 짧게 설계해서 소비자가 더 빨리 새로운 제품을 사도록 유도하는 것을 계획적 진부화 (Planned Obsolescence)라고 합니다. 계획적 진부화는 1920년~1930년대 산업화가 본격화되면서 기업들이 더 많이 팔기 위해 제품의 수명을 인위적으로 제한하기 시작하면서 등장했습니다. 유명한 초기 사례는 '포이베스 카르텔(Phoebus cartel/1924)', 국제적인 전구 제조업체들이 모여 전구 수명을 인위적으로 1,000시간으로 제한하기로 합의했던 것이죠. 기술적으로는 전구 수명을 더 늘릴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요. 비교적 최근인 2017년에도 애플이 배터리 노후도에 따라 기기 성능을 의도적으로 저하시킨 적이 있었고(애플 배터리 게이트), 엡손은 프린터 잉크가 남아있는데도 잉크부족 경고를 보내거나 프린터 작동을 멈추게 해서 새로운 프린터를 구매하도록 했던 사례가 있습니다.
최근에는 계획적 진부화에 대해 문제의식이 커지고 있고 애플도 배터리 게이트에 대해 2,500만 유로의 벌금을 내야 했죠. 하지만, 지속적으로 새로운 제품을 자주 구매하는 것, 그것이 현대 자본주의 경제를 돌아가게 하는 힘이고 기업들이 추구해야 하는 가치라는 생각이 지난 100년을 지배했었습니다. 최근에서야 심각해진 기후변화로 인해 제품을 얼마나 친환경적으로 만들고 얼마나 오래 쓸 수 있느냐가 중요한 질문이 되었습니다.
EU가 먼저 시작한 에코 시장
EU는 2023년부터 제품이 얼마나 친환경적으로 만들어지고, 사용, 재활용되어야 하는지 규정을 만들었고(CBAM, ESPR), 그 기준에 충족하지 못하면 세금을 내거나 심하면 EU 내에서 유통하지 못합니다. 2026년과 2027년에 이 규정들이 본격 시행될 예정이라서 우리나라 기업들도 부산하게 대응방안을 준비하고 있죠.
CBAM(Carbon Border Adjustment Mechanism)은 "탄소 국경 조정 메커니즘"이라는 뜻입니다. 간단히 말해서, EU(유럽연합)가 다른 나라에서 들어오는 제품들에 대해 "이 제품이 만들어질 때 얼마나 많은 탄소가 배출되었는지"를 따져보고, 탄소 배출이 많다면 탄소배출권으로 내야 하는 추가 세금을 부과하는 제도입니다. 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나라의 제품은 비싸지니까, 기업들은 더 친환경적으로 만들려 노력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예를 들어, 커피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양의 탄소가 배출되는데, 주로 질소비료의 사용이나 커피 재배를 위해 열대우림을 훼손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탄소 배출이 많은 커피는 EU로 수입되면서 CBAM 때문에 세금이 붙어 가격이 올라갑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가격이 덜 오르는, 탄소 배출이 적은 다른 커피 브랜드를 찾기 시작하는 거죠.
ESPR(Ecodesign for Sustainable Products Regulation)은 "지속가능 제품을 위한 에코디자인 규정"이에요. 쉽게 말하자면, 제품을 더 오래 쓰고, 재사용하고, 재활용할 수 있도록 만드는 규정입니다. 섬유(의류·신발), 철강, 알루미늄, 가구, 타이어, 세제, 페인트, 윤활유, 화학물질, 정보통신기술(ICT) 제품에 대해, 내구성, 재사용/재활용 가능성, 수리 용이성 및 환경 발자국 정보를 공개해야 하고, 이를 충족하지 못하는 제품은 EU 내 유통이 불가능합니다. 2027년부터 디지털 제품 여권(DPP) 부착을 반드시 부착해야 하고, 미판매 제품을 버릴 때도 공시해야 하며, 아예 일부 제품은 폐기를 금지합니다.
예를 들어, 스마트폰이 쉽게 고장 나거나 재활용이 어렵다면, 이 제품은 EU에서 퇴출될 수 있습니다. 더 튼튼하고 오래 쓸 수 있는 스마트폰을 만들지 못하면 그 기업의 주식은 떨어질 가능성이 커집니다. 많은 양의 옷을 폐기하는 패스트 패션기업은 환경을 중시하는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게임의 규칙이 바뀐다.
저탄소 제품으로 바꾸는 데는, 특히 그 제품을 만드는 에너지부터 제품 생산, 유통, 재활용까지 전체 과정이 달라지는 데는 상당한 노력과 진통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물론, 저탄소 전환에 성공하는 기업들이 많아진다면, 내구성 있는 제품들이 더 많아진다면 장기적으로 보면 소비자들에게도 이익이 되겠지요. 하지만 단기적으로 소비자들은 제품 가격이 비싸지는 것을 경험할 테고, 우리나라와 같은 수출중심국가들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할 경우 수출경쟁력이 약화될 수 있습니다. 때문에 기후변화 관련 정책들이 새로운 무역장벽이 되지 않을까 걱정하기도 합니다.
예상되는 단점과 우려가 있다고 하더라도, 저탄소 사회로의 전환은 더 이상 미룰 수가 없습니다. 유럽뿐 아니라 미국도 유사한 규정의 도입을 검토하고 있죠. 즉, 세계 무역의 게임이 규칙이 바뀌고 있고, 이에 얼마나 잘 적응하느냐가 중요한 것이죠.
탄소 배출이 많은 방식으로 철강을 만드는 나라에서 EU로 철강을 수출한다면, CBAM 때문에 가격이 올라가서 EU의 기업들이 그 나라의 철강을 사는 대신, 탄소 배출이 적은 다른 나라에서 철강을 사게 될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탄소 배출이 많은 나라들은 결국 그들의 제조 방식을 개선하거나, EU 시장을 잃게 될 가능성이 큽니다. 그 결과, 세계 각국의 기업들은 탄소 배출을 줄이는 방향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게 되겠죠.
우리나라도 EU로 철강을 많이 수출하는 나라입니다. 하지만 아직 신재생에너지 비율은 10%에 불과합니다 (OECD 평균 34%).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 공급할 전력도 LNG(액화천연가스) 열병합 발전소 6기를 건설해 공급할 예정이라고 하는군요. CBAM이 천연가스를 저탄소 에너지로 인정할까요?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언제까지 인정할까요?
게임의 규칙이 바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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