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기후변화 사고실험] 플라스틱에 대한 이율배반적인 감정

옛날이야기 


20-30년 전쯤, 제가 어릴 때는 짜장면을 배달시켜 먹으면 빈 그릇을 문 앞에 내놓았어요. 그러면 몇 시간 후에 중국집에서 그릇을 찾으러 왔었고요. 짜장면 그릇은 가벼운 플라스틱 제품이었는데, 스크래치가 나고 때로는 그을어 있기도 했습니다. 그릇을 빨리 찾으러 올까 봐 부담감이 들면 우선 집에 있는 그릇에 내용물을 옮기고 얼른 짜장면집 그릇을 내놓기도 했지요. 


아마 10년 전쯤부터였던가요? 아니면 그 이전부터였던가요? 1회용 플라스틱, 특히 비닐봉지나 커피컵을 쓰지 말자는 인식이 생겨났어요. 마트에는 장바구니를 들고 가고, 행사에 가면 십중팔구 에코백을 사은품으로 줬어요. 텀블러가 유행하고, 누군가는 텀블러를 수십 개씩 사모으기도 했습니다. 커피숍에 텀블러를 들고 가면 조금이나마 할인을 해주기도 했었고요. 


환경문제에 둔감했던 저도 최근에는 바다 한가운데 있는 쓰레기섬을 알게 되고, 플라스틱 빨대가 콧구멍에 들어간 거북이나 그물에 걸려 죽어가는 바닷새 사진도 보게 됩니다. 선진국들은 중국이나 동남아에 수출하다가 입구컷을 당해 쓰레기를 돌려받는 뉴스를 봤을 때는 부끄러웠고(그 해프닝 이후에는 또 어떻게 저떻게 틈을 만들어 쓰레기 수출을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인도네시아 같은 나라에서는 플라스틱 쓰레기를 태워 두부과자를 만들거나 벽돌을 굽는 다큐를 봤을 때는 당황해서 말문이 막혔습니다. 


플라스틱에 대한 이율배반적인 감정


지금 저는 거실에 앉아서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이 공간에 있는 것 중에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것이 뭐가 있나 찬찬히 둘러봅니다. 선풍기나 에어컨, 일체형 수납공간이나 싱크대 찬장, 빨래 건조대, 쓰레기통처럼 딱딱한 플라스틱도 있고, 아일랜드 식탁에 올려진 음식들은 거의 다 비닐이나 플라스틱 패키지에 들어있네요. 캐슈넛, 오렌지, 토마토, 어제 산 빵과 생수통, 컵빙수... 종이로 된 책이나 나무로 된 가구, 냉장고와 전자렌지를 빼면 거의 모든 것이 플라스틱이네요. 일상생활 너머, 의료기기나 항공, 자동차 산업의 부품, 신재생에너지 설비(ex. 태양광패널 뒤판)로도 플라스틱이 활용됩니다. 


이렇게 일상에 깊이 침투해 있고 편리한 플라스틱이지만, 플라스틱을 생각하는 현대인은 모두 조금쯤은 죄책감과 불안감에 빠지게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썩는데 최소 5백 년은 걸린다고 하고, 1번 쓰고 버리는 재활용이 거의 불가능한 문제성 플라스틱*들이 개도국이나 바다로 흘러들어 가고, 미세플라스틱을 우리가 먹게 되질 않나, 어떤 플라스틱에서는 환경호르몬이 나온다고 하고.... 

* 문제성 플라스틱 : 일회용 플라스틱 포장재(비닐봉지, 플라스틱 빨대, 컵, 식기), 다층 구조 플라스틱(감자칩 봉지처럼 여러 층의 플라스틱과 금속이 결합된 플라스틱), PVC(폴리염화비닐, 건축 자재, 배관, 전선 피복), 폴리스티렌(스티로폼, 해양 생물들이 먹이로 착각하여 섭취)


플라스틱을 안 쓰고 사는 게 가능하냐며, 약간은 억울하고 낙담한 기분에 빠지기도 하죠. '시스템에 맞서기에 나 개인은 너무 미약하잖아'라면서요. 플라스틱 산업은 석유/천연가스 산업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에 (석유에서 추출하는 나프타, 에탄, 프로판 같은 물질로 플라스틱을 만듭니다), 굴러가는 거대한 전차를 막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생각이 드는 거죠. 


플라스틱, 어떻하죠


태평양 한가운데 쓰레기 섬*을 보고 있자면 한숨이 나옵니다. 망했나 싶죠. 1950년대 처음 플라스틱이 만들어지기 시작해, 1990년대에 플라스틱 생산량이 1억 톤을 넘더니, 10년 만에 2억 톤이 되고, 이대로라면 2060년에는 12억 톤이 될 것으로 예상합니다. 

* 정식명칭은 "태평양 거대 쓰레기 지대(GPGP)", 하와이와 캘리포니아 사이의 북태평양 바다에 형성된 세계 최대의 해양 플라스틱 쓰레기 섬(약 160만 km 2, 1.8조 개 플라스틱 쓰레기, 8만 톤). 1997년 찰스 무어에 의해 발견되었고, 점점 커지고 있음. 


해결책은 있습니다. 플라스틱의 가장 큰 문제는 버린 것이 잘 썩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러면 일단 새로운 플라스틱을 덜 만드는 게 우선이겠죠. 재활용이 어려운 문제 플라스틱(전체 플라스틱 쓰레기의 30-40%)을 덜 사용하고, 잘 썩는 플라스틱(ex. 옥수수로 만든 생분해 빨대)을 늘립니다. 일단 만들어진 플라스틱은 최대한 재활용하고요. 


나아가야 할 방향은 분명하지만 국가별로 다른 입장을 가지고 있고(산유국과 비산유국, 선진국과 개도국), 합의한 내용을 강제하기가 어렵다는 것이 항상 문제입니다. 2022년부터 국가들은 모여서 플라스틱 국제협약을 만들고 있습니다. 오는 11월에는 부산에서 최종 5번째 협상을 진행합니다. 파리 협약 이후로 가장 많은 국가들이 참여하게 될 플라스틱 국제협약, 과연 플라스틱 생산 감축을 합의내용으로 이끌어낼 수 있을까요? 몇 년까지로 목표를 잡을지(많은 국가가 2040년을 밀고 있습니다), 이행을 의무화할 수 있을지(파리협약-온실가스 감축은 자발이지 의무가 아니죠)도 흥미롭게 지켜볼 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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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스틱 국제협약이 어떻게 마무리가 되든, 일회용 플라스틱 등 문제성 플라스틱을 줄이려는 개인적인 노력을 이어가야겠습니다. 정치나 기업을 볼 때도, 플라스틱 산업이 생산부터 재활용/재사용/분해가 용이하도록 하는 방향에 더 힘을 실어주어야겠습니다. 


글쓰기가 나와 세상을 바꿉니다.